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이가 아플 때는 치과에 간다. 산부인과를 찾아가는 바보가 있겠는가." 행동의 방향성(方向性)을 시사한 어떤 작가(作家)의 통렬한 이유다. 마차로 여행하는 사람이 있었다. 도중에서 마차에서 내려 잠시 쉬고 있으려니까 부근의 농민이 물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예, 초(楚)나라에 갑니다." "예? 초나라라고 하셨어요!" 농민은 깜짝 놀라 마차를 본다. 초나라는 분명히 남쪽에 있는데 마차는 북쪽을 향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길이 엇갈렸습니다. 초나라에 가려면 거꾸로 남쪽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행자는 가슴을 펴면서 "걱정 말아요. 이 말은 보통 말이 아닙니다. 굉장히 빨리 달리니까요." "아무리 말이 빨라도 이 방향으로 가면 초나라에 도착할 수가 없어요." 농민이 놀라면서 다시 말하자. "괜찮아요. 아무리 오래 걸려도 여비는 충분하니까" 하고 여행자는 조금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 사람이군. 아무리 여비가 많아도 초나라에 갈 수야 없지…" "걱정 말아요. 더욱이 우리 마부는 말 다루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니까." 여행자는 여전히 가슴을 제킨 채 그대로 마차를 몰게 하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행동을 일으킴에 있어 극히 중요한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말이 뛰어난 준마(駿馬)로서 잘 달리고, 여비는 충분하며, 마부는 말 다루는데 뛰어난 사람이면 그럴수록 여행자는 초나라로부터 멀어져 가버리리라. 방향을 잘못 잡으면 아무리 뛰어난 결단을 내리고 모든 준비를 갖추었으며 강력한 실행력이 있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은 불가능한 일이다. 무릇 사람이 행동을 일으킬 경우 거기에는 일정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비로소 그 행동은 효과가 있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 행동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는 도리어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행동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실행하는 이상 소기(所期)의 성과를 거둬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행동의 방향성이 올바른 쪽을 향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무척 열심히 했는데…" 하고 자기의 불운을 안타까워하는 실패자(失敗者)를 본다. 그러나 냉정히 분석할 때 그는 열심히 엉뚱한 방향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열심히 망한'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비행기는 하늘로, 배는 바다로, 기차는 철로 위로 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기차가 어찌 바다위로 열심히 달린다 할 수 있겠는가? 누구인들 웃기는 짓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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