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지난 연말 근무부서의 시정평가 결과가 나왔다. 전에 근무했던 부서가 4년 연속 S등급을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후임으로 온 친구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친구가 몸이 아파서 휴가를 냈다는데 예감이 좋지 않다. 얼마 후 지인으로부터 그 친구가 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요즘 암 환자가 많다고 하지만 암 하면 죽음이 먼저 떠올라 선뜻 전화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그 친구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가 옆에 살면서도 못 가봐서 마음이 불편하다며 필자보고 같이 가자고 했다. 항암치료를 하고 나면 입맛이 없을 테니 전복죽을 끓여서 가자고 했다. 친구가 평소 직거래하던 거래처에 싱싱한 것으로 주문을 했다. 음식을 잘 못하는 필자는 주방보조로 열심히 도왔다. 입맛이 없을 친구를 위해 정성을 다해 죽을 쑤었다. 꿈틀거리는 전복도 처음 잘라 봤다. 온갖 재료를 넣고 끓인 육수를 붓고 저으니 죽이 맛있게 익어간다. 친구가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들뜬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몇몇의 친구들이 모였다. 다른 일정이 있는 친구들도 오늘 만큼은 다 제쳐놓고 모두 모였다. 친구의 집 초인종을 누르려니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많이 힘들 텐데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 머리엔 두건이 씌워져 있었다. 두 번의 항암치료에 머리가 빠졌단다. 죽을 식기 전에 먹이고 싶어 그릇에 담아 주며 먹기를 권했다. 맛있다고, 고맙다고, 눈물 반 웃음반인 친구를 보며 함께한 모두의 맘이 울컥했다.

 그간의 근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암 판정을 받은 뒤 한 달간은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왜 안 그러겠는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친구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을지 짐작이 간다. 시집보낸 딸이 임신 중이라 제일 걱정이 되었단다. 사위에게는 말을 했지만 임신 중인 딸에게는 차마 말을 못했단다. 딸이 받을 충격과 태중의 아이에게 혹시 나쁜 영향을 끼칠까 염려하는 엄마의 마음일 게다.

 건강한 내일을 약속하고 우리는 전복죽이 기다리고 있는 옆 친구 집으로 왔다. 전복이 가득 담긴 죽 그릇을 비우며 서로의 건강을 다짐했다. 모임이 끝나고 친구가 어머님하고 끓여 먹으라고 전복 몇 개를 싸 주었다. 오늘 실습한대로 끓여서 어머님께 올리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아직도 전복은 냉장고에서 꺼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매일매일 정신없이 돌아치는데 무엇 때문에 바쁜지도 모르며 사는 것 같다. 바쁜 중에 그 친구에게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노심초사하며 걱정했던 딸이 건강하게 손녀를 낳았단다.  손녀를 안고 미소 짓는 친구를 보니 온갖 시름이 다 녹는 듯 보였다. 친구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천사 같은 아기는 분명 할머니의 아픔을 다 거둬가 줄 것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우린 늙어 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고 했잖은가. 친구도 지금은 고통스런 시간을 맞았지만 그 아픔을 딛고 조금씩 익어갈 것이리라. 친구야! 우리 함께 조금씩 익어가자꾸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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