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일본의 내 고향 나가노현(長野縣)은 때로는 신주(信州)라는 옛 지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글자의 뜻을 보면 "믿음이 좋은 곳", "신앙의 고장"이라는 뜻인데 실제로 602년에 건립되고 일본 최고(最古)의 아미타여래상을 모시는 선광사(善光寺)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신주"라는 지명의 유래는 기원전부터 전해져 내려온 토착신을 모시는 수와대사(諏訪大社)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처럼 역사 이래 나가노는 일본 동부지방의 신앙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곳이다. 지금도 나가노에는 유서 깊은 절과 신사들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다. 일본의 가장 오래된 영성이 깃든 고장 중 하나인 셈이다.

 세계적인 애니메이션의 대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 감독의 작품을 보면 일본인들의 신관(神觀), 종교관을 잘 알 수 있다. "원령공주(1997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년)" 같은 작품 속에는 강의 신, 나무의 정령(精靈), 개구리나 물고기, 심지어는 식물조차도 영성을 가지고 사람과 의사소통하는 존재로 묘사돼 있다. 자연계의 모든 것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상, 다시 말해서 일본의 토착종교는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과 같은 자연종교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야오요로즈(八百萬)", 즉 모두 합치면 일본에는 800만의 신들이 있다니까 그저 놀랄 따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에서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는다. 1549년 예수회의 선교사 프란시스코 사비에르(Francisco de Xavier)가 일본에 천주교를 전파한 이래 4세기반이 지났지만 개신교까지 포함해도 그리스도교신자는 전체 인구의 2.4%, 300만 명이 채 안 된다. 신·구 합치면 1,400만 명에 육박하는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도 큰 차이가 난다. 이 정도면 일본에는 그리스도나 이슬람교와 같이 치밀하게 체계화된 교리와 조직으로 이루어진 유일신교(唯一神敎)가 자라는 토양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문화인류사학적으로 보면 대부분의 지역 또는 민족에게 있어서 종교의 출발점을 자연종교에 두는 경우가 많다. 현재 한국인이 믿는 종교로는 크게 그리스도교, 불교, 유교의 3 종교로 나뉘는데 자체조사에 의하면 각각 1,000만 명을 넘는 신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이 사회, 문화, 정치, 경제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에 얼마나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는 모두가 잘 알 터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한국에서도 일본과 같은 토착신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낮에는 가마솥, 부지깽이, 몽당 빗자루로 변신하고 있다가 해가 지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해 인간세계에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존재, 도깨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그들 말이다. "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의 저자 중앙대학교 김종대 교수에 따르면 도깨비란 돗(불 또는 곡식의 씨앗)+아비(아버지)라는 뜻으로 원래 능력이 꽤나 좋은 토착종교의 재물신(財物神)으로 백성들의 추앙을 받다가 유교, 불교, 그리스도교 등 강력한 힘을 가진 외래종교가 들어오면서 미천한 존재로 전락한 것이라 한다.

 얼마 전 도깨비를 주제로 한 TV드라마가 큰 인기를 모았다.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부조리하고 답답한 현실을 타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제도화되고 경직돼버린 기존 종교에 대한 환멸이 민족혼 깊은 곳에 숨어서 지내던 도깨비들을 대중 앞에 불러낸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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