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근 변호사

[오원근 변호사] 며칠 전 충북시민재단 1004클럽에서 주최하는 강연에 갔다. 주제는 '음양오행과 관상으로 보는 리더십'이었다. 음양오행이나 관상 같은 말을 들으면, 보통은 미리 결정되어 있을 것 같은 운명을 연상한다. 그런데 강사는 역학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려 언제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의사는 참된 의사가 아니고, 그렇게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진짜 의사이듯, 사람의 운명이 사주팔자에 의해 어느 정도 방향은 정해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 장점을 찾아내어 이것을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진짜 역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강사는 변화라는 말을 강조했다.

 조치원 부근의 절에서 운영하는 고시원에서 사법시험 공부할 때였다. 처음 하는 고시원 생활이었는데, 아무런 방해 없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무척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정서적 억눌림이 터져 나왔다.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집은 소작농이라 무척 가난하고,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시고 자주 어머니를 괴롭혔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노라면 집안이 시끄럽지 않을까 늘 불안했다. 몇 번은 그런 집안을 벗어나 농막에 가 촛불을 켜고 공부한 적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 속에서도 자식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 오일장을 다니며 곡물노점을 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나의 성장시절을 강하게 지배했다.

 정서에 대한 억압이 심했다. 공부는 아주 잘 했지만, 남들 앞에서 당당하지 못했다. 이렇게 쌓여온 억압이 20대 중반에 구체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고시원에서 산 중턱에 있는 만경사까지 다녀오려면 50분 정도 걸린다. 그 길을 매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다녀오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눈이 많이 올 때는 머리에 두껍게 쌓이는 눈을 그대로 이고 오기도 했다. 산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에 있는 나무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산에 있는 나무들은 어디에 서 있건, 양지이건 음지이건, 키가 크건 작건, 살아있는 그 자체로 다 당당해 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들이 정말로 살아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어찌 보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의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쓸모없을 것 같은 의심이, 매일 계속되는 산보와 함께 3개월가량 이어졌다. 의심은 무겁고 깊어졌다. 봄이 왔다. 죽어있는 것만 같았던 가지에서 싹이 텄다. 그것을 본 나는 어떠했을까. 살아있구나. 나도 살 수 있겠다. 마치 내게서 싹이 나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자연에서 변화를 배웠다. 난 사주팔자, 역학, 관상 같은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중요한 것은 환경이 만든 습(習)이고, 그 습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면 이것을 끊는 것이 인생이 추구할 바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자신과 세상, 자연을 살피는 방법밖에 없다고 본다. 며칠 전 강사가 말한 변화가 그런 것이라면 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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