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막 4월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산책을 하고 들어오던 남편이 일이 밀려 같이 나가지 않고 책상에 앉아 있던 내 손에 작은 꽃 두 송이를 건네주었다(꽃을 꺾은 것은 미안합니다). 갑작스런 꽃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꽃을 들여다보다 너무나 진하고 깊은 향기에 또 한 번 놀랐다. 모양이나 색상은 보통 보던 벚꽃이랑 거의 비슷했다. 벚꽃이 향기가 원래 이런가 놀라, 매화인지 벚꽃인지 궁금해져 검색해보았더니 설명이 자세히 나온다.

 매화가 벚꽃보다 일찍 피는 것 말고도 생김새로도 두 꽃을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벚꽃 잎은 끝이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면 매화 잎은 그냥 동그랗다. 또 매화는 꽃자루가 줄기에 붙어 있지만 벚꽃은 줄기에서 길게 나와 있고, 여러 개의 꽃자루가 한 지점에서 나와 꽃송이들이 마치 다발처럼 모여 핀다. 그러고 보니 그날 꽃은 매화였다. 이런 세밀한 차이를 모르고 보면 두 꽃이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향기 차원에서 보자면 두 꽃을 혼동할 일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매화에는 형태나 빛깔과 같은 눈에 보이는 자태와는 다른 차원의 어떤 말로도 형언하기 어려운 깊고 그윽한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예전에도 매화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날처럼 강렬하게 느껴보기는 평생 처음인 것 같다. 마치 설리번 선생님이 어린 헬렌 켈러의 손을 수돗물에 갖다 대어주며 'water'라고 써주었을 때 그녀가 늘 스쳐왔던 물의 존재를 난생 처음 인식하게 되는 순간처럼 말이다. 그 후 며칠 동안은 걸어서 출근하다가 길 옆 아파트 울타리 바로 안쪽에 피어 있는 매화 가지를 살짝 당겨 향기를 맡곤 했다.

 나중에 보니 복숭아꽃도 색은 좀 진하고 크긴 해도 모양은 매화와 비슷했다. 생김새로는 비슷한 꽃들이 많으니 향기야말로 매화를 다른 꽃들과 구별되게 해주는 매화의 고유함이라 할 만하다. 다른 꽃들은 피어날 엄두도 내기 어려운 추위에 고고히 자신만의 향기를 머금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신흠은 <야언>에 실은 시에서 "매화는 일생 동안 아무리 추워도 향기는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고 하였다. 그는 추운 날씨에도 묵묵히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매화에게서 어떠한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는 지조를 본 것이다.

 그렇다면 벚꽃은? 벚꽃에는 매화처럼 진하게 번지는 향기는 없다. 그렇다고 벚꽃이 매화보다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매화와 벚꽃, 각각의 고유한 존재방식과 아름다움이 다를 뿐이다. 벚꽃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흐드러지게 나무를 뒤덮던 설렘 만큼이나 아쉽게 사방으로 흩어지는 아련함에 있다. 유독 벚꽃을 대할 때는 들뜬 마음으로 행복해하는 순간, 사그러짐의 아픔을 감내할 마음의 채비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벚꽃 아래 서면 "벚꽃이여 흩어져 하늘을 어둡게 하여라 늙음이 찾아오는 길이 헷갈리도록櫻花散りかひくもれ老いらくの來むといふなる道まがふがに"라던 저 먼 헤이안 시대 아리와라노 나리히라처럼 머무르지 않는 세월에 안타까이 억지를 부려보고 싶어진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