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유난히도 극심했던 가뭄에 이어 폭우가 쏟아지더니 연일 폭염 경보도 내려지고 있다. 논밭이 마르다 못해 갈라지고, 저수지 바닥에 잡초가 우거지는 가뭄이었기에 장마 아니 태풍이라도 기다렸었다. 시냇물의 노래도 멈춘 지 오래였고, 바닥엔 말라 죽은 물고기와 다슬기의 단말마의 비명도 들리는 듯하였다. 지난 7월 16일, 생명수로 반겼던 비는 불청객인 수마(水魔)로 바뀌어 할퀴고 간 상처는 한 달이 가까워지도록 아물지 않고 있어, 과유불급(過猶不及)의 교훈을 뼈저리게 되새겨보게 한다.

 충청 지방, 특히 청주를 중심으로 내린 집중호우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 15~16일 청주에 쏟아진 폭우는 302.2㎜에 달했고, 청주기상지청이 관측을 시작한 1966년 이후 최고 수준이라 한다. 마당의 물이 발목까지 고여, 배수구의 오물을 치우니 '쭉-'하는 굉음이 요란했다. 베란다에 흥건하게 괸 물에 화들짝 놀랐다. 벽돌과 창틀 틈으로 새들어온 물을 쓰레받기로 퍼 담고, 걸레로 닦고 짜내다 보니, 빗물과 땀이 범벅되었고, 아침도 거른 채 몇 시간을 싸웠다.

 점심때쯤 명암저수지 방면으로 올라가 보았다. 집에서 한나절을 보낸 후라 그사이 명암천 물이 좀 줄었지만, 둑의 풀과 나무가 휩쓸린 것을 보니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청주박물관 방면 도로를 저수지 옆에서 차단하고 경찰관이 지키고 있었다. 명암타워 쪽 다리까지 물이 차서 건물도 침수되었다니……. 떠내려 온 각종 쓰레기가 물길을 막아 피해가 더 컸을 것이다. 저수지에도 가득히 쌓여 생긴 쓰레기 섬을 보니 더욱 삭막하고 착잡하였다.

 며칠 후, 낭성에 가서 고향 분들을 만나보니, 귀중한 인명 피해도 있었고, 방송으로 보고 듣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였다. 나의 모교이고 근무도 했던 학교는 살펴보지 못했지만, 그 앞산은 자랑하던 갈맷빛 대신 뻘건 산사태 흔적들이 처참하였다. 텔레비전으로 본 무너진 전하울다리 옆에는 국군장병들이 새로 건설했다는 튼실한 다리가 놓여있었다. 다리 난간에는 태극기가 힘차게 휘날렸고, 옆에는 청주시청에서 설치한 '시민 여러분 힘내십시오.'란 현수막이 응원을 하고 있었다. 관계기관과 전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정성의 손길은 큰 힘이 되었다.

 청주시와 괴산군은 재해 특구로 지정이 되었고, 5호 태풍 노루도 걱정이었는데 일본 열도로 방향을 틀어 참으로 다행이다. 아쉽게도 특구가 안 된 진천, 증평 등 수해를 입은 충청도 모든 곳의 복구도 원활하게 되어야 하겠다. 곳곳에는 도로에 웅덩이가 생기고, 토사가 쌓이고, 성난 탁류가 요동치며 외치고 있었다. '여기는 원래 우리가 흐르던 물길이야. 사람들이 도로를 만들고 아파트 등을 짓느라 파헤쳐서 그런 거야.'라고.

 아무리 기다리던 비도 지나치면 이번 호우처럼 큰 피해를 준다. 과유불급이란 말처럼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니 모든 것이 적당하면 얼마나 좋을까! 비도 적당히 오고, 더위도 너무 심하지 않고, 국민의 심성도 고와지고, 욱하는 분노도 잘 조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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