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불의에 직면했을 때 못 본 척 지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지 도우려 애 쓰는 사람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자氏가 후자에 속한다. 장애를 갖은 빈곤한 이를 보면 행정기관에 문의하고 그에 합당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선다. 본인을 포함한 시민의 불편사항이 있으면 그 또한 관철 될 때까지 타당성을 내세워 민원을 제기한다.

 가로수길을 지나다보면 휴암 버스승강장이 보인다. 산뜻한 모습이 보기 좋다.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도 있고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버스의 도착시간을 알려주어 마음 놓고 기다릴 수 있다. 안전하고 보기에도 좋은 승강장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녀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차들은 속력을 내어 달리고 노인이 버스가 오는지 보느라 차도로 내려 간 것도 모자라 머리를 쭈욱 내밀고 있는 위험천만한 광경을 목격하였단다. 그날 그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시청에 전화를 걸어단다. 담당공무원이 민원인의 이름을 묻자 그녀가 '이기자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담당자가 재차 확인하더란다. 그 후 몇 차례 더 승강장의 필요성을 피력하고 승인이 떨어져 공사가 시작 되었단다. 직접 세워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수고하는 인부들에게 커피대접을 했단다. 오늘에 휴암 버스승강장이 이렇게 탄생하였단다.

 요즘은 집 근처의 승강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노인들의 편의를 위해 전광판을 세워 달라고 민원을 넣었단다. 시의원에게도 수차례 부탁을 하여 내년 봄에는 승객들이 버스를 편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지치지도 않는 열정의 이 기자氏는 평범한 이순(耳順)의 아줌마이다. 그녀의 이름은 이런 삶을 예견한 선견지명(先見之明)으로 지어진 것은 아닐까. '이 기자입니다.' 어디선가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자 애쓰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약자의 편에 서서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애쓰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런 이기자氏 덕분에 세상은 온기가 있고 아직은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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