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오늘도 엄마랑 병원을 가는 날이다. 어릴 적 등교하기 전에 요일을 확인하고 시간표에 맞춰 교과서를 챙겨가듯이 눈 뜨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를 먼저 확인한다. 왜냐하면 요일별로 가는 병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신경과, 어느 날은 가정의학과, 한방병원, 재활치료과 등등. 오늘은 치과다.

 수명 100세 시대에 맞추려면 엄마에게는 아직 15년이 남았다. 병원을 순례하다 보면 일주일이 언제 지났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가끔 내가 지쳐 투덜대보기도 하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모시고 다니는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걷지 못하는 엄마가 아니겠는가. 투덜거린 것이 미안해져 뻣뻣한 엄마 손을 잡아본다. 부모가 주시는 사랑만큼은 조건 없이 받아도 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겠다.

 무지막지한 여름 더위도 잘 견디시고 이제 선선한 가을에는 바람 쐬러 다녀도 되겠다 싶었는데 이가 고주배기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틀니를 걸만한 자리가 없단다. 겨우 지주처럼 버티고 있는 이가 부스러지니 엄마도 놀라셨겠지만 나도 다리가 풀리는 듯 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방법이 있기나 한 걸까…….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기는 하지만 입원을 해도 병원 측에서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는다. 수술도 적극 치료도 견딜 수 있는 연세이고 보니 이제는 몸을 잘 달래서 마지막까지 사용하는 방법 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가 없으니 죽으로 연명을 해야 한다. 하루 만에 눈이 퀭하다. 워낙 소식을 하는 분이라 죽 한 공기로 하루를 사신다. 매주 금요일은 엄마와 외식을 하는 날로 정하고 무작정 맛난 식당을 찾아다녔었다. 재활치료 받고 나면 손가락 하나 들 힘도 없이 축 쳐져서 자꾸 누우려고만 하신다. 집에 가서 밥 먹지 뭐 하러 돈 쓰냐고 하시는 엄마를 무조건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외식을 한다. 돈 아까운 생각이 드시는지 별미가 당기는지 집에서 보다 훨씬 많이 드신다. 그런데 이가 없으니 그것도 틀렸다. 다시 틀니를 만들어 끼기까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링거를 맞게 하다가 의사처럼 마지막 처방을 내렸다.

 엄마가 예전부터 좋아하시는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잡채와 옥수수와 묵이다. 엄마의 묵사랑은 정도 이상이다. 비싼 정식이 코스로 나오는 식당에서도 엄마는 묵과 잡채만 드신다. 내가 억지로 묵 접시를 내보내면 그담에는 먹을 게 없다고 하신다. 특별한 영양가가 없다는 생각이지만 지금은 묵이 최고의 약재라는 생각이 든다. 밀폐용기를 차에 싣고 목령공원 부근으로 묵밥을 사러 간다. 고기도 아니고 생선회도 아니고 싸구려 묵을 사러 말이다.

 가끔 화타 같은 명의가 존재하긴 한다. 요즘은 내가 화타에 비할 바 없는 명의가 아닐까. 이 하나 없이 오물오물 체하지 않고 묵밥 한 그릇씩 뚝딱 비우신다. 얼굴에 화색이 돈다. 오늘은 주차장에서 병실 문 앞까지 휠체어 없이 비틀비틀 걸어 들어가셨다. 이쯤이면 화타나 허준에 비할 바 없는 명의에 최선의 처방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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