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김혜경 충북여성문인협회장·수필가] 어느새 스웨터를 걸쳐야 한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다. 추석 명절이 지난 후 우르르 몰려 왔던 아이들이 또 우르르 몰려 떠났다. 아이들의 차가 주차되어 있던 자리에 낙엽이 몰려다닌다. 열흘이나 되는 긴 휴가로 더러는 더 힘들었다는 부모들도 있고 더러는 손주 얼굴 구경도 못했다는 어르신도 계신다. 젊은 부부들은 유럽으로 러시아로 관광을 떠나고 노인들은 여전히 빈 집을 지키고 있다.

벌써 어깨가 시리다. 가을부터 내년 봄이 오도록 스웨터를 둘둘 감듯 걸치고 겨울을 나야 한다. 얼마 전에 넘어져서 다친 무릎이 욱신거린다. 세월이 간다는 것은 낡고 병들어 간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90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장식장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놋그릇을 바라본다. 예전 같으면 벌써 마당에 펼쳐 놓은 멍석 위로 부려졌을 것들이 신분의 상승으로 장식품이 되었다. 검게 변한 그릇을 보며 어머니는 저걸 한번 씩은 닦아줘야 하는데 하며 혼잣말을 하신다. 곁에서 들었으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명절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많았다. 부모님의 마음보다 내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의 나이가 되어서야 아이들을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설레는지, 아이들이 가고 나면 얼마나 스산한지 알 것 같다. 명절날 아침 숟가락을 놓자마자 아이들은 서둘러 가방을 챙긴다. 이것저것 봉지봉지 찔러 넣어 보내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다. 단출한 가방으로 아이들은 떠나고 휴일은 닷새나 남았다.

무릎을 감싸 안고 자리에 눕는다. 하늘이 높다. 몇날 며칠 얼려둔 송편으로 끼니를 때워야겠다. 얼려둔 전과 갈비로 또 며칠은 지낼 것이다. 끼니가 되지 못하는 과일은 또 어떻게 먹어치울까. 풍요가 쓸쓸함이 되기도 하는 건가.

내 오랜 친구, 다정한 친구,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영원한 친구인 TV를 켠다. 앞으로 남은 닷새는 그 친구와 찰떡처럼 눌어붙어 지낼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TV를 참 좋은 친구라고 생각한다. 내 절친을 사람들은 바보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날렵하고 슬림하게 모양을 바꾼 그 친구를 왜 바보라고 하는가. 나를 바보로 만들어서 그가 더 좋다. 복잡한 일상의 일을 잊게 하는 것을 그의 으뜸의 공로로 쳐야할 것이다.

살다보니 목젖 보이게 웃을 일보다 땅 꺼지게 한숨을 내리쉴 일이 더 많다. 자리에 누워 자려다가도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잡다한 일들 때문에 밤을 하얗게 새우게 된다. 노인은 잠 때를 놓치면 날밤을 새우게 된다는 말이 맞다. TV를 틀어 놓고 자는 날이면 오히려 잘 잔다. 결론 없는 고민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이 해준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멍청이라고 한다. 괜찮다. 환갑을 목전에 두고 많은 친구들이 서둘러 세상 뜨고, 마음 다쳐 돌아서고, 내가 갈 수 없는 먼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고 곁에 남은 친구가 많지 않다. 그들 하나하나가 참 소중하다. 그리고 온 밤 내내 내게 말 걸어주는 TV라는 친구도 참 좋은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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