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과학적 사고를 하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고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보편적인 학습 과정에서도 과학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는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라는 의미에서 과학적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래서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거의 모든 학문에 '과학'이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 같다.

오늘날 이렇게 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근대에 과학이 제 모습을 갖추는 과정에서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다른 영역의 학문들과 많은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 중에 종교와의 갈등은 매우 심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두 학문은 자연 현상의 이치를 설명하려는 노력이 같았기 때문에 충돌도 많았다. 근대를 살면서 지동설을 주장하여 파문을 당한 갈릴레이는 현대에 와서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면을 받고 복권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창조론과 진화론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과학계 안에서도 이렇게 명확한 갈등이 존재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과학보다는 종교가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하는데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자연에 대한 종교와 과학의 가장 큰 시각 차이는 운명론과 확률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종교에서는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모든 것들은 미리 예정되어 있고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쉽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현대 과학에서는 자연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확률론적 관점에서 본다.

일어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 과학자들 중에서 종교적 신념이 강했던 사람들은 확률론적 사고를 거부하거나 자신의 과학 이론에 이러한 사고를 배제함으로써 과학의 발달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갈릴레이와 아인슈타인이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랍기도 하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의 판결에 순응하였을 뿐 아니라, 신이 창조한 완벽한 우주의 원운동을 자연스러운 운동으로 보았기 때문에 뉴턴이 찾을 수 있었던 중력의 법칙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였다. 아인슈타인도 확률론을 바탕으로 탄생한 양자역학을 거부하고 "신은 주사위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 과학은 종교의 구속에서 벗어나 많은 발전을 이룩하였고, 유전학이나 기상학 등 일상생활과 친근한 학문에서도 "부모로부터 유전될 확률"이나 "비가 올 확률"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적 사고를 못하는 사람 중에는 사고가 날까봐 비행기 타는 것은 무서워하면서도 자동차 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본다면 비행기 사고를 당할 확률보다 자동차 사고를 당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사고를 걱정한다면 비행기보다 자동차 타는 것을 더 무서워해야 과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다.

확률은 확률일 뿐이고 실제 나타난 결과는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비가 올 확률이 높다고 해도 비가 오지 않아 우산을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 때문에 확률적 사고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비올 확률이 90%라고 말해도 당장 비가 오지 않으면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적 사고를 원한다면 확률을 믿어야 한다.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터무니없이 당첨 확률이 낮은 로또 복권을 꿈자리나 운명론을 믿고 사지는 않을 것이다.

▲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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