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속의 고향은 초록이다.사계절 내내 자연의 그림을 선사하고 놀이터가 되어주던 곳. 동네 초입에 들어서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산들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던 날들. 산은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빛깔을 달리하며 날마다 새 그림을 그렸다. 수채화로 그린다면 어떤 색을 써야 할까? 사람마다 모습이 다르고 개성이 있듯이 초록도 한 가지 색이 아니다. 붓질한번 할 때마다 색깔과 물감의 농도를 바꿔야 할 만큼 나무마다 빛깔이 달랐다.

화려한 꽃이나 달콤한 열매가 아닌 잎사귀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나무들은 생명의 경이로움과 황홀함의 극치였다.

어릴 적 추억을 주우려고 뒷동산이나 들길을 거닐다 보면 왠지 모를 서운함이 밀려온다. 고향은 유년시절의 그곳처럼 늘 푸르른데 나만 훌쩍 세월을뛰어 넘은 느낌이 들기 때문일까. 계절이 바뀌어도 나뭇잎은 여전히 초록빛이지만 퇴색해 버린 내 어릴 적 꿈은 다음 계절을 기약할 수 없어서인가.

바람 끝에 더욱 진해지는 고향의 향기.

같은 바람이라도 고향의 보리밭을 지나오고 뒷동산의 숲과 밀어를 나누다 온 산들바람이 달짝지근하게 느껴짐은 나만의 착각인가.

몸무게에 비례해서 자꾸만 커지는 이기심, 욕심덩어리들. 마음은 늘 싱그러운 시절처럼 순수하고 싶은데 내 가족만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할 때면 이득이 되는지 얼기설기 따져보곤 한다. 추억을 되새기면서 마음은 아직도 애들처럼 행동하고 꿈을 먹으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나이가 되었으니 분명 화려한 꽃이나 달콤한 열매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잎사귀만으로도 아름다움을 주는 나무라도 되어볼까. 아니면 사계절 내내 자연그대로의 그림을 보여주는 숲을 닮아가려는 노력이라도 해 볼까.

마음은 초록빛인데 얼굴은 자꾸만 붉어진다.

▲ 모임득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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