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덕 칼럼니스트

 

[장연덕 칼럼니스트] 혹시 연쇄살인이나 강간살해 등의 강력범죄자들이 검거되고 나서, “불운한 성장배경”을 운운하며 자신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스로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십니까. 아버지가 어머니를 학대에서 어려서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내와 계속 젊어서부터 이혼하고 등등, 심심치 않게 있지요.피해자보다 먼저. 그러니 사과가 먼저 나오질 않고 증거가 다 확보되고 국민적 여론이 악화될 때 그때서야 비로소 판사앞에서나 돼야미안하다, 라는 쑈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사과는 강자의 특징이다.”

요즘 자존감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요. 자존감의 유무가 사과가 언제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마음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마음이 아닌,남과 상관없이 내가 여전히 고귀하다는 믿음에서 비롯합니다. 자신의 고강함을 보여주는 마음의 척도입니다.학창시절 유난히 잘못을 인정 못하고 오히려 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 뒤에서 특정인물을 험담하고 끌어내리는 일을 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도처에 있었지요. 모종의 사건에서 가해자가 남성인 경우에는, 철저하게 남성편만 듭니다.

남녀의 성별이 결부되지 않은 사건에서도 그닥 정의롭다거나, 본인의 잘못을 빨리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거나 하는 등의 장점은 보이지 않지만, 평소 문제가 드러나기 전에는 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친절하고, 예의바르고, 친화력이 좋다” 라는 공통점. 어딘가 모범생의 흉내를 내는 외견. 적을 안 만들어 이익을 유지하려는 일관성.언제나 강자우선으로 기울고 이익을 계산하는 일관적인 태도.눈치에 민감한 근성.사과를 해야 한다거나,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한다거나, 가해자에게 정당한 비난을 가한다거나 하는 등의 내면이 강하고 무언가 거침없이 시원시원한 태도는 무척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들에겐 사실 봉합되지 못한 상처가 있던 것 같습니다.아버지가 어머니를 식칼로 위협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에 비해 학력이 너무 저열해서 매번 무시당하는 것을 보고 큰 아들, ‘애비없는 새끼’ 라는 욕을 먹고 큰 아들, 아버지가 어려서 어머니를 무참히 구타하고 아들까지 끌고 가서 구타하고,이혼하고 재혼하는 모습을 본 아들, 어려서 초등학교 5학년때 뒷산에 동네 청소년들에게 끌려가 윤간을 당하고 그 충격으로 키가 안자라 150센티 간신히 넘는 명문대 출신의 딸,어려서 눈 뜨자 마자의 기억이 첩인 어머니가 구정에 밖에 나오면 창피하니 찌그러져 있으라는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피투성이 멍투성이가 돼서 추운 골방에 누워있는 걸 본 것인 명문대출신의 딸, 아버지가 신분이 미천하고 어머니가 저학력이라 어려서부터 먹고살기 힘들고 간신히 본인하나 대학 들어온 남성 등입니다.

물리적, 사회적 폭력, 가부장제가 주는 폭력 등을 겪고 자란 부류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탓입니다.’ 이 태도가 즉각 당사자에게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다면,불행을 자신이 극복 하였나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누구나 암울한 과거를 겪었다고 다 사과를 못하지는 않습니다. 약한 개체가 폭력의 역사를 저열함으로 풀어내는 것 아니겠습니까. 당신의 유전자는 사과를 허용합니까.당신은 강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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