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신찬인 수필가·전 충청북도의회사무처장] 보름여전 단풍이 얼마 남지 않고 오솔길의 낙엽이 사각사각 밟히던 날 아내와 함께 독립기념관 단풍나무 숲길을 걸었다. 독립기념관을 에워싸고 3.1킬로미터 단풍나무가 심겨져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다. 짓궂은 바람에 갓 떨어진 단풍잎이 나풀나풀 날리고 길 위에 수북이 쌓인 낙엽은 이리저리 쓸려 가고 있었다. 조금은 스산한 느낌도 있지만 그래도 가을의 끝자락을 좀 더 잡고 싶은 마음에 아주 천천히 길을 걸었다.

 그리고 한 줄의 시를 떠올려 보았다. "나뭇잎이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며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학창시절 배운 한 줄의 시가 늦가을만 되면 떠올라 심금을 울려 주곤 한다. 한 참을 걷다 보니 찻집이 있어 커피 잔을 들고 가게 앞 평상에 앉았다.

 사람들은 언제 행복을 느낄까? 큰돈이 생겼을 때,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었을 때, 아니면 시끄러운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출 때 일지도 모른다. 사람마다 행복의 대상이나 척도는 다를 수 있지만 본인이 목표했던 것을 이루었을 때, 예기치 않았던 행운이 찾아 왔을 때 행복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큰 행복이나 행운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늘 행복에 목말라 하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소확행'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소확행'이라는 말은 작고 확실한 행복의 줄인 말로 1990년대 무라야마 하루끼의 글에서 처음 소개되었다고 한다. 크고 깜짝 놀랄만한 일보다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아야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다. 이를테면 추운 겨울 난롯가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것, 빵조각을 나눌 때의 보들보들하고 부드러운 감촉, 커피 잔을 탁자에 내려놓을 때 나는 청명한 울림, 그리고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한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릴 때의 아늑한 느낌, 그래서 누군가는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다 주는 따스함의 문제'라고 했나보다.

 얼마 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인 삶의 만족도가 OECD 국가 중 최하위라고 한다. 심지어 우리보다 어렵게 살고 있는 부탄이나 라오스 같은 나라의 국민들이 우리 보다 체감하는 행복이 훨씬 높다고도 한다. 물론 더 높은 것, 더 많은 것을 지향하는 우리 국민의식이 지금의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양적인 삶보다는 질적인 삶을, 외형적인 과시보다는 내면적인 충실함을 추구할 때인 것 같다.

 행복은 강도(强度)가 아니라 빈도(頻度)라고 한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지나온 삶을 반추할 수 있고, 한 소절 노래를 들으며 잠시나마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 금년이 다 가기 전에 가까운 공연장에라도 가보자. 그저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고개도 끄덕여 보고 박수도 쳐 보자. 그리고 어렵게 겨울을 나고 있는 이웃들을 찾아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 보자. 어느덧 행복은 내 마음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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