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고추 밭이 학비를 몽땅 맡았지. /밥 한 술 뜨시자마자 /호미 하나 달랑 들고 /온종일, 이랑이랑 긴 밭을 단거리 선수처럼 달리셨다. /필자의 동시 '고추 밭' 전문이다. 늦가을 짧은 볕을 붙잡고 몇 근 안  되는 고추를 말려 학비를 대시던 생전 어머니 생각으로 초겨울은 무채색 화장을 한다. '교육은 곧 농심'이라며 어머닌 몸소 '체온의 본(本)'을 택하셨다. 요즘, 자녀를 두고 '동심(童心) 실종'에 허탈해 하고 있다. 학교도 걱정거리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교무실 앞, 전교생을 움직였던 추억의 놋쇠 소리 '땡땡땡'…이 그립지만 아이들은 되레 어른 걱정이니 학부모도 자녀도 서로 희망찬 종소리다.

 포항지역 지진으로 인해 사상초유의 수능연기라는 돌발 상황을 겪었다. 국민 반응은 "잘 했다"다. 기상청·행안부·지자체간 순발력 있는 인식 공유에 주목한다. 교육부 당초 계획이 그랬어야 맞다. 당당하고 의연하지 못했다. 공(功)의 무게가 행안부로 실리는 이유다. 아마추어부총리와 프로장관은 뭔가 달랐다. 순연된 학사일정 재조정, 급식제공 차질, 기말고사 연기 등 교육부와 대학 시도교육청과 고등학교의 차분한 대응조차 못미더워 '뭣들 하느냐'며 정신을 뺐다. 핵심 관계자를 제쳐둔 채 전문가랍시고 이 사람 저 사람 끼어들어 혼란을 부추긴 건 침묵만 못했다.

 울타리 밖에서 닦달하면 오히려 본말까지 전도되기 일쑤다. 머잖아 얼치기 전문가가 비집고 들어와 교육부 업무까지 송두리째 이리 왈 저리 왈 하는 건 아닌 지 혼란스럽다. 일주일이 일 년보다 긴 혼란과 불면으로 절박했던 59만 수험생, 아무튼 공포 속 안정을 딛고 평가를 무사히 마친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무한 격려를 보낸다.

 이제 눈높이에 맞게 수시와 정시의 문을 노크해야 한다. 생각해 보면 미래의 영광, 후회 모두 스스로 감당할 몫이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여 구만리 앞길을 후회할 때도 있다. 삶은 상상 초월일 수 있다. 소질과 적성 그리고 평소 꿈꿔온 길을 택하라. 오지 않는 시간을 기다리느라 입 닫고 12년 동안 꼬박 멍했던 수업에 멀미한 학생들, '인생수능'으로 생각하면 결코 아까울 것도 삶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힘겨운 고비를 넘긴 용기처럼 야무진 자신을 만드는 풀무질은 없으니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정상화와 대학교육 소화능력 측정을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 하나에 의지해온 적폐, 대형 수술 주문이 끓고 있다. 어쨌든 문제의 근원을 꼼꼼히 따져볼 때다. 그동안 여러 차례 땜질 개선을 해 왔으나 기본과 목적 이탈로 '물·불, 괴짜 수능' 오명만 반복됐다는 학부모 분노역시 대승적 해법을 방증한다. 멈칫거리다간 또 다른 정부부처에 칼자루를 뺏긴 채 어리바리할 공산이 크다. 마냥 미룰 수도 없다. 이참에 교육부는 제대로 된 대입제도를 내놓아 반전의 타이밍을 잡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해마다 똑같은 지점에서 똑같은 몸살로 시달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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