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결백을 밝힐 방법은 단 하나, 너무나 지쳤다고, 이 세상과 하직하려던 시인의 자살 시도 소식을 접하며 방금 먹기 시작한 밥이 식도에 걸렸다. '애먼 사람 또 하나 잡았군!' 올해는 윤동주 시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라 문사의 사연이 더욱 안타깝다. 시인은 시로 세상을 노래하다가 가야 하는 사람인데 이것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인가.

 악플 세상은 그를 향해 여전히 무기를 휘둘렀다. 그동안 괴롭힌 것도 모자라 이미 반 죽다시피 한 사람에게 글 총과 글 칼을 휘두르고, 글의 수류탄을 던지며, 글 대포를 쏘며 더 죽으라고 쏘고, 찌르고 쑤셨다.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 것인가? 그토록 죽어가야 할 만큼 죄를 짓기는 한 것일까? 더한 죄를 지은 사람도 강철 같이 살고 있는데, 그는 왜 무너졌어야 했는가.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은 죽음을 선택했던 시인의 소식을 듣고 한 조각의 미안함이라도 느꼈는가.

 발단은 지난해 10월, 한 신문의 기사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기사는 빠르게 각 언론매체로 옮겨졌고 36시간 만에 그는 성범죄자가 되었다. 익명 게시 글의 무차별한 확산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를 처참하게 매장하고 말았다. 근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고립되고 외면당하여 땅을 딛고 살 수가 없었다. 징역살이가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도 했다. 사회적 생명이 끊겼다고도 했다. 그의 정신은 병들어 버렸다. 아버지의 호소로도 정상인으로 살 자신을 회복하지 못했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만이 지닌 능력인 말과 글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전락된 것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렸을 뿐 아니라 치유될 수 없는 정신적 무기력으로 목숨마저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북한이 쏘는 미사일만 무기가 아니다. 이 시대는 말과 글이 사람이 죽이고 상하게 하며 한 인간의 삶과 정신을 송두리째 갉아먹는 시대이다. 마음 놓고 말하기도, 글을 쓰기도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아무나 컴퓨터를 가지고 있고, 아무나 스마트 폰이 있어서 아무나 매일, 24시간 동안, 아주 쉽게, 이른바 아무 말 대잔치라고 불리는 향연에 따로 초대받지 않아도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손님이 된 것이다. TV 시청을 즐기는 지인이 필자에게 물었다. "우리나라가 요즘 한꺼번에 왜 저런다니?" 한가한 시간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시청하다가 용수철 튀듯이 제멋대로 내동댕이치는 말 폭탄을 보며 한 말일 것이다. 한 말 또 하고, 하고 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말 대잔치 상의 음식이 되어 마구 먹힐지도 모르는 세상이다. 먹으려고 들면 이길 장사가 없으므로 먹히지 않기 위해 말을 아끼고 침묵하며, 귀를 막고 터지려는 속을 꾹 누르며 잠자코 엎드려 산다. 조금 억울해도 참고, 조금 손해 보아도 참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뎌보려고 한다. 필자는 슬픈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 남을 슬프게 하는 것은 자신도 슬픈 일이다. 그러려면 남의 인생도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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