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상철 단국대병원 농업안전보건센터장

[노상철 단국대병원 농업안전보건센터장] 얼마 전,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책을 본 기억이 난다. 젊은 시절 잘나가던(?) 연쇄살인범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치매(알츠하이머)에 걸리면서 생기는 사건에 대한 소설이었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로 향하고 있는 오늘날 '죽음보다 두려운 질병'으로 회자되는 것이 치매인 만큼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듯하다.

 중앙치매센터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우리나라 치매 인구는 약 69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신경계 기능이 저하되어 기억된 것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건망증이 발생하며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노화과정이다. 그러나 치매(dementia)는 후천적으로 기억, 언어, 판단력 등의 여러 영역의 인지 기능 감소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치매의 원인 중 하나가 노화에 있듯이 고령의 나이는 치매로 이환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농촌지역의 고령화 문제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인구문제로서, 생산인구 감소의 경제적 측면 뿐 아니라 각종 만성퇴행성 질병의 발생률 및 유병률 또한 도시지역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치매도 만성퇴행성 질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농촌지역에 치매 환자가 많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의 원인을 단순하게 도시에 비하여 농촌지역의 노인 인구비율이 높기 때문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농업이 현대화가 많이 되었다고들 하지만 여전히 고되고 노동력이 많이 필요로 하는 산업임은 분명하며 농기계로 인한 손상의 위험 뿐 아니라 농약이라는 화학물질에의 만성적 노출 등은 명백한 건강의 위해인자이다.

 최근 한 해외 유력 학회지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프랑스의 포도재배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9종류의 신경행동학 테스트 결과를 농약 노출의 유무에 따라 나누어 분석 한 결과, 농약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인지기능 검사 결과가 낮을 가능성이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약에 직접 노출된 군에서는 간이인지기능검사(MMSE) 결과가 2.15배 낮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충남 농업안전보건센터(센터장 노상철)에서 농업인의 농약사용량과 인지기능 저하와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으로 꾸준한 데이터 수집을 통하여 농업인의 농약사용량과 지역별, 작목별, 성별 등에 따른 인지기능 저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올바른 농약 사용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농업인의 농약 노출과 인지기능 저하 감소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올 한해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어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사실 가장 고위험의 집단은 살충제를 직업적으로 사용하는 직업인 즉, 농업인이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원인 제거 또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나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노출을 최소화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한정적이다. 정부는 농업인의 건강에도 눈을 돌려 농약정책 마련 시 농업인의 건강을 우선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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