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연덕 칼럼니스트

[장연덕 칼럼니스트]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방넓다 나도 같이 자도 되겠다"라는 성희롱 발언을 들을 때 긴바지 차림이었습니다. 상황을 재해석하여 피해자에게 창녀취급을 하는 비이성적 판단. 이것은 분명히 폭력입니다. 근절되어야 합니다. 정작 가해행위를 한 자는 피해자가 사과를 받으러 오면 사과를 못하겠느냐는 선선한 태도를 보이지만 오히려 그 가해자를 관리해야 할 책임자는 그러질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사람은 어려서의 가난이 트라우마로 남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정, 그리고 대외적 평가가 흔들리면 오게 될 경제적 손해, 명성,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함이 이 사람에게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저런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은 대부분이 생계가 거기에 달린 사람들입니다. 정의나 상식보다는, 생존이 먼저인 부모 밑에서, 예의라든가 양심이라든가 고귀함이라든가 하는 등의 가치전달을 못 받고 자라게 됩니다. 사과하는 법도 모르고, 잘못을 인정할만한 자존감을 키울 기회를 어려서 박탈당한 채 자라게 된 것이지요.

 사과는 강자의 특징입니다. 강자가 되어야 사과가 가능합니다. 성희롱은 사과를 즉각하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당장 먹고 살기 힘들고, 아내를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법을 배울 틈이 없던 아버지는 이 상황에 신사처럼 대응하는 방법을 못 가르칩니다. 그 롤모델을 보고 자란 사람들이 이 성희롱 사건이 터지면, 곁에서 그 말실수를 더 큰 실수로 만들어버리는 폭력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당사자가 사과하고 끝나면 될 일을, 주변에서 오히려 피해자를 고립시키고, 겁박을 하고, 행실과 옷차림을 마치 이슬람사회인양 그 기준으로 몰아세우며, 이른바 '창녀프레임'을 덧씌워 문제를 희석시키는 폭력을 저지르는 게 당사자의 단순실수보다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교육의 힘을 지금 다시 한 번 믿어봐야겠습니다. 실수를 했으면 잘못했습니다, 말하는 게 먼저다, 곁에서 잘못한 사람을 덮어주기 위해 오히려 더 죄를 짓는 건 나쁘다, 라는 유치원생 수준의 교육을 지금이라도 해서 고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현재 저런 성희롱과 주변인들, 조직의 구성원들의 적반하장식 공격으로 인해 자살충동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을 걸로 예상합니다. 분노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나라가 저런 인간됨을 잘 배울만한 먹고 살만한 나라였나, 그 점을 객관적으로 돌아봤으면 합니다.

 이제는 교육으로 나아가는 태도가 중요한 때입니다. 저의 옷차림을 엉뚱하게 지적하던 분에게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입었던 성적코드로 해석하는 것은 본인의 마음이 정결치 못하여 나오는 결과물입니다. 또 사과란 잘못한 자가 직접 가서하는 게 기본입니다. 우리가 일본에게 위안부문제로 사과 받으러 일본가야겠습니까. 현 정부는 성희롱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며 관리책임자에게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기틀이 변모하는 와중에 우리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 건지 다시 생각해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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