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구 청주시 오창읍 산단관리과장

[한현구 청주시 오창읍 산단관리과장] 고려 말엽인 1377년(우왕 3년) 청주의 흥덕사에서는 불교와 관련한 세기적 서적이 간행되고 있었다. 고려왕조의 국사를 지낸 백운 스님이 지었고, 그 시자나 제자, 승려였던 석찬·달잠·묘덕이 주도해 펴낸 서책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쇄된 두 권의 책으로 이름하여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상·하권이다. 그로부터 546년이 흐른 1923년 서울(당시 경성)에서는 흥덕사에서 발간된 '직지'와 깊은 인연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이 태어나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여성으로 국내 최초로 유학 비자를 받아 프랑스의 파리 제7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은 박병선 박사다.

 박병선 박사는 1967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같은 해 수많은 도서관 소장품 중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했다. 이후 고증작업을 통해 1972년에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 종합전람회'에 출품해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앞선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자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국제적 공인을 받게 만든다. 1985년도에는 외규장각 의궤의 행적도 밝혀냈는데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베르사유 분관 폐지창고에 방치돼 있었다. 이 일로 인해 박사님은 도서관을 그만두게 됐으나 일반인의 자격으로 10여 년 동안 매일을 하루같이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해 자료를 열람하고 정리해 2011년 5월 고국으로 반환(5년마다 갱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2009년 박사는 자료 수집 차 방한했던 기간 중 심한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직장암 4기 판정을 받았고 국내에서 수술을 마친 후 그해 12월 프랑스로 돌아갔다. 거기서 병인양요에 대한 정리 작업을 하다가 2011년 11월 22일(한국시각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향년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직지의 대모이며 대한민국의 문화독립군이었던 고운 님을 여읜 지도 어느덧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박사의 유지를 받들어 시에서는 직지의 반환 내지 대여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오고 있으며 프랑스에서는 반복적으로 이를 거부하고 있다. 프랑스 측의 반응에 실망하기보다 이참에 직지를 고리로 해 청주시와 파리시 간 문화교류나 협력사업을 시작함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또한 국내 불교계와 함께 손잡고 흥덕사 재건이나 복원 사업을 시도해 봄직하다. 해마다 돌아오는 11월 22일에는, 먼 이국땅에서 한민족의 빛나는 유산인 직지를 발견하고 그 위대함을 밝히고 가신 고운 님을 기억하고 추모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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