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수필가

[이향숙 수필가] 별이 내려앉았다. 아파트마당과 상가의 트리를 화려하게 휘감았다. 상점마다 흘러나오는 캐롤은 소박했지만 아름다운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마침표가 얼마 남지 않은 달력을 남겨두고 금박, 은박 색종이로 아이들은 정성껏 트리를 장식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은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저녁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신앙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담긴 연극을 했다.

 자정이 다 되어 새벽 송을 돌때는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목도리를 둘둘 말아 펭귄처럼 뒤뚱거렸다. 장갑 낀 손으로 눈을 뭉쳐 친구들과 장난을 쳤다. 그러다가도 교우 집 앞에 다 달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찬송가를 불렀다. 정성껏 준비한 군고구마와 따끈한 보리차를 내어주기도 했다. 선물은 남자아이들이 주머니에 담아 어깨에 메었다. 재간둥이 친구가 산타할아버지 흉내를 내자 아이들은 웃음보를 터트렸다.

 띄엄띄엄 떨어져있는 교우 집은 어둠속에서 등대처럼 불을 밝혔다. 하얀 세상은 길인지 밭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 도랑에 발이 푹푹 빠졌다. 어머니의 털신을 신고 양말을 두 켤레씩 신었어도 발은 점점 감각이 무뎌졌다. 두 어 시간에 거쳐 새벽 송을 돌고 교회 가까이 왔을 즈음 목사님과 선생님은 아이들이 걱정되는지 마당을 서성이셨다. 한 팀 한 팀 도착 할 때마다 장갑도 끼지 않은 언 손으로 아이들 손을 잡아주셨다.

 빙 둘러 앉아 선물 주머니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사탕, 센베이, 뻥튀기가 쏟아져 나왔다. 소박하지만 어렵게 마련한 선물임을 알고 있었기에 감사한 마음으로 다과를 준비했다. 그 때쯤 한 친구가 무거워 보이는 주머니를 내려놓으며 큰 선물을 받았다고 너스레를 떤다. 넉살이 좋아선지 시선이 집중되었다. 의기양양한 친구가 주머니를 훌렁 뒤집어 쏟는다. 기대와는 달리 배추가 쏟아진다. 아이들은 실망스런 표정을 짓다가 금새 킥킥거린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 역력하다. 행여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이 아닌지 걱정하시자 개구쟁이는 김장이 끝나고 남은 저희 밭에서 뽑아 온 것이란다.

 먼발치에 교회의 십자가가 보인다. 하늘과 맞닿은 듯 웅장한 교회의 외관은 선을 따라 전구들이 반짝인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사랑하신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성탄절, 예수님은 지금 기쁜 마음으로 내려다보실까. 우리들의 삶속에서 스스로 예수가 되길 바라진 않았을까. 화려한 성탄절 풍경에 어린 시절로 추억여행을 잘 다녀오고 공연히 심통이 나서 졸렬하게 트집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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