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바람이 분다. 이제 겨우 싹을 틔우는 여린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겨울바람처럼 날카롭고 괴기스러운 소리가 창을 흔들며 내 귓가를 맴돈다. 어떤 시인이 봄을 일컬어 "본격적으로 슬픔이 시작되었다" 라고한 이 기막힌 말을 떠 올리지 않아도 나는 겨울보다 꽃샘바람이 더 춥고 슬프게 느껴진다.

감기로 수강생 몇이 빠진 수업을 대강 마치고 상가(喪家)에 들렀다.

멀리서 온듯한 조문객들이 오랜만이라며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밥을 먹고 웃음소리가 밖으로 흘러나오고 조화가 없다면 일상 같은 상가엔 슬픔이 없다. 꽃이 피는 계절이라 그런가?나는 봉투에 부의(賻儀)라고 써서 부의함에 넣고 망자의 며느리와 몇 마디 인사치례를 나눈 후 상가를 나왔다. 영안실 담장엔 노란개나리가 해맑게 웃고 그 뒤로 목련꽃이 환하게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다. 머지않아 꽃이 하늘을 덮겠지.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슬프지? 집으로 오지 못하고 카페 '연어가 돌아 올 때'에 들러 홍선생님을 만났다. 아주 가깝게 지내던 지인이 심각하게 아프다는 말을 하면서 눈가가 촉촉해 진다.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고 싶어졌다.

별도 없는 하늘이 깜깜하다. 한숨이 나오는 것을 다시 밀어 넣고 혼자서 털레털레 걸었다.

내가 오늘 우울했던 건 슬픔이 없는 상가의 풍경도 아니고 홍선생님의 아픈 마음도 아니다. 꽃샘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린 그 사람이 그리워서는 더 더욱 아니다. 하루 종일 불어대는 봄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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