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첫눈이 내리자 정원의 나무들이 흰옷으로 갈아입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또 한해를 보내게 되며 수구초심(首邱初心), 마음은 또 고향으로 달려간다. 어머님 손을 잡고 청주고 입학시험을 치르려고 청주역에 내리던 때가 어제 같은데 6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사람의 일생은 눈 깜짝할 사이의 부싯돌 불빛"이라고 한 채근담의 글을 실감하게 된다. 그동안 나는 부모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받고 耳順이 가까운 나이에 어머님께서 아들의 머리를 손수 깎아 주시고 부모님이 계시며 군자삼락을 누리는 축복 받은 생활이었다.

 어머님께서 8개월에 걸친 병원생활도 보람 없이 98년 10월 8일 이승의 삶을 다하시고 영면(永眠)하셨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듯, 이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어머님의 병상을 지키면서 生老病死 愛別離苦의 괴로움을 겪는 한해였다. 고향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분이 어머님의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가 굽이굽이 역사적인 격동기를 살아왔고, 고향을 떠나는 아들의 건강을 비는 어머니의 마음과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떠오른다.

 지난 세월을 살아온 노·장년층에 애송되는 "비 내리는 고모령", 고모령의 산마루턱에서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애절한 모습, 차마 떨어지지 않는 손을 놓고, 헤어지는 모자간의 애절한 이별의 장면이다. 고모령은 40년대에는 일제치하에 징용이나 징병으로 사지(死地)로 끌려가는 아들과 어머니가, 50년대에는 동족상쟁의 6.25전쟁의 참화 속에 전쟁터로 떠나는 자식을 보내는 어머님과의 이별의 장(場)이요, 60년대는 피폐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떠나는 아들과 어머니가 헤어지던 고개였다. 그 노래를 불렀던 국민가수 현인씨도 오래전 우리 곁을 떠났다.

 고모령은 우리 모두의 고향의 언덕이요, 고모령을 넘는 아들은 지난날 우리 모두의 아들의 모습이었다. 불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지는 고통을 애별리고(愛別離苦)라고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요 숭고한 것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헤어짐의 고통은 더욱 크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고모령 에서는 아들을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은 계속되리라.

 농촌에는 나이 드신 어머님만 남으시어 객지의 자식이 성공하고 건강하기를 빌며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바쁜 생활일지라도 고향에 안부 전화 드리는 아들의 모습이 보고 싶다. 또 계절이 바뀌나 보다, 가을을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눈이 내린다. 무정한 게 세월이요, 덧없는 게 인생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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