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별별 걱정 다하는 엄마 / "…" / 똑같은 얘기 / "…" / 다르르 외운 걸요, 벌써 / 필자의 동시 '엄마는' 전문이다. 며칠 전, 방학에 심취한 어린이집 재학 중인 손주 카톡을 받았다. "아빠와 함께 팝콘 만들기 하고 있어요." 물론, 동생과 셋이서 조리복으로 단장한 사진까지 첨부했다. '엄마 참견? 아니올시다'의 진짜 방학 모습이었다. 깡충깡충 뛰는 걸 넘어 깨금발로 서며 좋아하니 방학은 얼마나 큰 선물인지 계측조차 어렵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향해 감당하기 힘든 주문만 닦달하고 그럴 때마다 "싫어요, 안 해요, 창피해요"를 일상어로 쏟는다.

 "너 자꾸 그러면 혼난다. 형 (언니) 좀 봐, 넌 정말 못 말려. 또 실수하면 그냥 안 둘 거야." 아이는 부모와 소통을 닫고 존재감마저 상실한 채 삐딱선을 탄다. "엄마, 오늘 국어 수업시간에 선생님께 칭찬 받았어요.", "그래 얼굴이 환해졌구나. 화이팅!" 너줄하지 않은 부모의 응원, 엄청난 믿음으로 커간다.

 '무조건 이겨야하는 한풀이식 욕심' 부모 정서가 팽배해 있다. 생존을 헤치려면 경쟁이 필수지만 지나치게 오르는 일에 줄곧 올인해 왔다. 말로는 지식 정보화 시대의 홀로서기인 '자기주도 생활인'을 곧잘 운운하면서 여전히 원격지휘하는 부모, 아이들 방학은 주름투성이다. 브론테의 말처럼 소나기가 내려 장미를 활짝 피운다면 그 소나기를 미워할 이유가 없다.

 조급한 나머지 부모의 계산된 틀 속에 자녀를 묶어둔 생활로 창의나 자기주도란 오해다. 18÷2=9를 맞힌 아이가 18÷9는 헤맨다. 수학에서 무의적으로 답이 나올 수 있도록 외워야할 것은 원리를 정확히 이해한 곱셈 구구인데 2×9와 9×2도 끙끙거린다. 기본적으로 곱셈이 되지 않으면 나눗셈을 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점수 공포 때문에 18÷2=9를 달달 암기한 줄도 모르고 성적이 올랐다며 신나는 부모의 치명적 고장, 집요한 억지로 미래는 참담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엄마 열정은 필요할 때가 따로 있다. 소중한 '내 아이' 장래를 망칠 셈인가?

 기성세대는 여러 형제나 친구와 어울려 다투고 풀면서 자랐다. 요즘 아이들에겐 자아를 형성해갈 시공간(時空間)마저 없다. 참다운 삶과 인성의 여백인 동심 위에 걸핏하면 "절대 지지마라"는 절절한 무장을 부모가 주동하다보니 자녀들 역시 순수를 잃게 된다. 채찍질만 한다고 계속 달릴 수 없다. 방학의 가장 큰 장점은 '쉼'의 개념을 떠나 진정한 사람을 만드는 세대간 역할기회다.

 '딸·아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부모와 함께한 시간에 비례하여 마음이 자라고 세상 품는 뼘도 넓어진다. 하루 종일 흙투성이가 돼 돌아온 자녀에게 꾸중보다 신났겠다며 맞장구쳐주는 부모, 몇이나 될까. 새끼한테 배울 게 많은 어미일수록 행복하다. 방학은 한철 장사가 아니다. 평범한 생각 나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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