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오병익 전 충북단재교육연수원장] "선생님, 여기 짐승이 많아요." 체험 길, 다람쥐들이 떼를 지어 재주부리는 모습을 보고 한 아이가 소리 지른다. "맞아. 맞아. 짐승이 많아." 동물 놀이터에서 들려 온 꾸밈없는 소리다. "다람쥐는 짐승보다 동물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란다." 선생님의 재치 있는 가르침 장면이다. 해는 바뀌었지만 아직 살이 떨린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멀쩡하던 아기들이 80여분 만에 네 명이나 죽어갔다. '세상에, 세상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실로 망연자실했다.

 짐승보다 열등 개체들의 섬찟한 생명유린 맞다. 비싼 입원비가 되레 생명 홀대라는 게 더 개탄스럽다. 병원과 정부, 궤변만 번지르르할 뿐 아직 억측에 떨고 있다. 국민들의 분노 이유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설렘도 잠시, 눈 한 번 제대로 맞추지 못한 채 가족과 가계(家系)까지 송두리째 조각냈다. 부검 대에까지 올라 그렇듯 잔인한 일기를 어른들이 쓰게 했다.

 며칠 전, 손주 셋을 앞세워 하와이 체험학습 길에 올랐었다. 출국 수속과 탑승 기내식 제공 모두 '아이 먼저'였다. 주위 환경은 딴판인 데 마구 뛰는 손주들, 그러나 철저하리만큼 보행자 우선으로 '생명을 받드는 안전', 아이 천국을 만들어 미래 동력의 체급을 올리는 나라, '무엇이 소중하고 최선인가'를 경험한 조(祖)·손(孫)간 공동학습이었다. 걸핏하면 출산 정책에 보육과 복지를 앞세워 시끄러운 우리 현실, 실제로 처벌은 강화됐지만 스쿨존 쌍방향을 덤벼든 자동차들끼리 엉킨 경적소리는 갈수록 요란하다. 인도를 빼곡하게 메운 주차 차량 사이로 걷는 안전 불감의 학교 앞 아이들, '출산 운운' 자체가 부끄러운 나라다.

 원래, 영·유아보육법의 적용을 받는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와 시도지사 관할 아닌가. 문제 발생 시 툭하면 부처 간 '모르쇠와 떠넘기기'로 일반화돼 왔던 터다. 따지고 보면 저출산 원인도 결국 아이를 우습게 여기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 만 3∼5세 보육 및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누리과정) 실현에 엄청난 예산을 쏟아도 정신적 공황만 늘었을 뿐 결혼과 출산율은 오히려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뻔히 알면서 뒷북만 치는 정부만 믿고 아이를 낳았다간 낭패란 걸 혹독하게 앓는 중이다. 기억을 잊어서 일까? '소 잃고 외양간만 고쳐댄다'는 성토조차 둔탁해졌다. 상상초월의 육아 비용은 고사하고 힘들게 얻은 아이조차 싸늘한 주검으로 끊어놓는 현실, 출산율 기대는 허구다.

 머지않아 실망할 반성문을 아랑곳 않고 금방 인구가 폭발될 것 같은 지방선거의 잔머리 굴린 어정쩡한 정책 남발로 찬란하다. 책상머리 계획보다 실용이 우선해야 변화를 가져온다. 동심(童心)은 본대로 품고 들은 대로 뿜어낸다. '아이 대접'부터 챙겨라. '생명 존중',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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