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연일 매서운 한파가 우리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런 가운데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 새해 달력의 첫 잠을 유난스럽게 수식했으며 조금 있으면 오랫동안 정들었던 교정을 떠나야 하는 학생들과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입문하려는 학생들의 교착점을 알리는 두 번째 장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마치 해마다 반복되는 계절의 변화인양 그때그때마다의 꿈을 품듯이…….

젊은 혈기만 왕성했지 철이 없던 시절에 희망이 부풀어 올라 연극대사처럼 읊조리던 ‘다시 한 번 미쳐보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 떠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젊은 혈기로만 넘쳐있던 대학 초년생 시절에 모든 일들이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반대 방향으로 흐르거나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했던 말이었다.

그 말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는 이미 마음속으로 무엇인가를 결심한 뒤 행동으로 옮기기 직전에 우유부단해지거나 갈등이 생길 때면 한 걸음 더 나아간 듯해서 즐겨 읊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지럽고 숨 막힐 것만 같았던 내 희망이 젊은 꿈이 그렇게 나를 부추겼던 것 같다. 무엇을 하겠다 또는 무엇이 되겠다는 것 자체보다도 무엇인지 모를 야망에 들떠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댔고 몰두했으며 그냥 그 무엇엔가 미치지 않으면 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Hamlet)은 그의 주저하고 멈칫대며 고민하는 성격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오필리아를 잃게 되었고, 항상 망설이고 흐느적거리는 성격 탓으로 어머니 거트루드와 숙부 클라디우스가 정분이 나서 아버지를 독살했음을 알았을 때도 항상 숙부에게 꼭 복수하고야 말겠다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놓쳤다 그래서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으로 햄릿의 우유부단함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왜 우리는 주저하고 망설이기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확실한 내일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가슴에 꿈과 희망을 품고 산다. 비록 예측 불허의 앞날이 놓여 있을지라도 그리고 맑게 개일지 비바람이 몰아쳐 폭풍우가 불지 그 누구도 예상은 못하지만 오로지 우리의 꿈과 희망을 위해 두 손을 걸고 앞날을 가야 한다.

우리가 희망을 품고 세상을 살다 보면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과 일어나지 않아도 좋을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란 살아있는 동안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잠시 세상에 유예되어 있을 뿐이며 유한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삶에 꿈과 희망을 불어넣고 사랑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가끔씩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허무하다, 허무하다, 소리치면서도 삶에 대한 애착은 강하지 않은가?

시작과 끝을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같은 시점이다. 우리가 꿈과 희망을 이루고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위로의 말로도 해줄 수 없는 노력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노력과 고통 없이 편안하게 이루어 질것이 만무하며 노력과 고통 뒤에 숨어있을 더 큰 고통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빛과 그림자의 관계처럼 희망과 고통은 항상 병존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한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일어서기 마련이라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아울러 그 고통은 우리 인간만이 극복해낼 수 있기 때문에 꿈과 희망의 든든한 밑거름이라는 뚜렷한 사실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보자. 그리고 세상을 향해 한 번 더 미쳐보자.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