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이진영 전 단양교육지원청 교육장·시인]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시작할 때는 대개 경건해지는데 올해는 어떻게 된 게 대형 사고가 계속 터지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가정 내의 살인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점이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핵심은 아버지라는 것이 학자들의 진단이다.

 가족 관계의 중심에 있고 인간관계의 시작점이기에 한 사람의 삶의 각본은 아버지에 의해 쓰이는데 이들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데서 이런 비극이 벌어진다. 다음은 어느 시골 초등학교 백일장 작품이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한 중학생의 '장날'이라는 시는 이렇다. "엄마는 이고 지고 간다 아버지는 그냥 간다/ 엄마는 이고 지고 온다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온다/ 그래도 남자라고 지랄한다" 모 기업체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운 하루'라는 주제로 그림 공모전을 열었는데, 출품작 대부분의 그림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소파에 누워 혼자 TV를 보거나 술에 취해 자는 모습이 대부분이어서 충격을 준 일이 있다. 어느 대학교에서 학생 5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68%의 학생들이 TV와 아버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면 TV를 고른다고 했다.

 자녀에게 맞고 사는 아버지도 많다. 어릴 때는 힘이 없어 아버지의 폭력을 참고 있다가 키 크고 몸에 힘이 생기면 항거하며 경제적 자립을 하고 나면 정신적인 학대까지 서슴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지금 자녀가 속을 썩이고 있는가? 자녀가 그런 언행을 하는 것에는 그동안 힘이 없어 대항하지 못하고 참았던 것과 깊은 인과관계가 있다. 그 눌려 있던 아픔이 폭력, 도박, 음주, 자폐, 무기력, 자기부정 등의 복수로 나타나는 것이다. 아버지가 뿌린 부정적 언행에 대한 자녀의 반격과 복수인 셈이다. '문제 자녀는 없다, 문제 아버지가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은 어느 아버지의 일기 내용이다. "몸살이 난 듯하여 큰 맘 먹고 회사에서 조퇴하고 집에 왔다. 아내는 친구 모임에 나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감기몸살 약을 먹고 소파에 누웠다. 잠시 후 학교를 마친 중학생 아들이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엄마'하고 몇 번 불러보더니 나를 본체만체하고 집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한 마디 한다. '어, 아무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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