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인식'은 기본적으로 철학적 개념에서 시작된 認識과 cognition의 번역어이다. 심리학에서는 종종 인지(認知)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는 생각, 경험, 감각을 통해 지식과 이해를 획득해 가는 정신적 행동 혹은 과정을 통해 대상을 알아가는 작업이며 이 과정에서 기존 지식을 사용하고 새로운 지식을 생성하게 된다.

 철학에서는 감성, 직관, 이성, 지성이 인식을 성립시키는 조건으로 본다. 이와 같은 심리적 과정의 하나인 인식은, 외부로부터의 '지각' 정보가 생체신호인 '감각'을 기반으로 구성되고, '지각(知覺)'에 대한 의미부여 과정에서 지성적인 능력 즉 이성과 지식이 개재함으로서 같은 대상(對象)에 대해 개인마다 다른 인식을 갖게 된다. 즉 지각(知覺)과 인식(認識)사이에서 갭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환(轉換)'은 paradigm shift의 번역어이다.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새뮤얼 쿤에 의해 제창된 패러다임(paradigm)의 어원은 그리스어 paradeigma로 pattern, example, sample을 뜻한다. '어느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프레임으로서의 인식체계 혹은 사물에 대한 이론적 틀, 체계'를 가리키는 말로 '규범(規範)' 혹은 '범례(範例)'로 치환된다.

 이 패러다임에 철학적 의미가 가미되어 '인식방법' '사고방식' '상식' '지배적인 해석'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패러다임 시프트는 정확한 언어적 의미보다는 '발상의 전환' '보는 시각을 달리한다' '고정관념을 버려라' '상식을 의심하라'는 의미로 확대해석 되면서 '참신한 아이디어에 의해 한 시대가 엄청나게 변화하는 것'으로 일반화되었다.

 1973년 대한가족계획협회는 "딸·아들 구별 말고..."로 시작되는 4인 가족 홍보물을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1980년대 들어서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며 3인 가족을 등장시켜 출산억제의 선봉에 섰다. 그러더니 2000년대에 들어서는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로 간판을 바꾸고 2005년에는 "인구보건복지협회"로 명칭을 둔갑시켜 출산장려기관으로 등장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출산율은 1.25명(2016)으로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젊은 인구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서울시 출산율은 전국 평균보다도 낮아서 합계 출산율이 0.8명(2017)으로 재앙수준이라고 예측하는 학자도 있다. 2006년부터 범정부 차원의 저출산 대응책이 100조원을 넘었음에도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부분 눈 가리고 아웅식의 단기적 대응책으로 일관한 행정의 부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생명의 출생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이 제도 하나, 단기적 축하금 지급 등의 단순 산술적 대책을 통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認識)의 어리석음이 돈과 세월을 낭비한 것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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