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가고 싶었다. 설원에서 펼쳐지는 진한 땀방울과 숨 막히는 투혼, 빙상위의 질주를 현장에서 보고 싶었다. 성화대를 환하게 밝힌 김연아의 부츠가 보고 싶었다. 평양에서 온 응원단의 표정 하나 하나에 마음이 갔고, 고다이라와 이상화의 아름다운 풍경에 가슴이 먹먹했다. 마늘소녀들의 컬링경기장에서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웃 동네에서 펼치는 올림픽을 방송과 신문을 통해서만 봐야했다. 성화 봉송에서부터 화려한 개막식과 경기의 주요장면을 안방에서 보는 재미도 있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생동감과 벅찬 감동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달려갔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인류의 평화를 이루자는 쿠베르탱 남작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기원전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의 제전이 근대 올림픽의 기원이다. 신의 제전 기간에는 지역간의 분쟁도 숨을 죽였다. 경기마다 우승자를 신의 제단 앞에 모시고 위대함을 흠숭했다. 몸과 마음이 가장 완벽했으니 신이 보기에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올림픽은 언제나 뜨겁고 진지하며 애틋하다. 개인의 재능을 보여주는 경연의 장이지만 국가간의 경쟁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올림픽에 집중하는 것이다. 올림픽을 유치하면 국가의 글로벌 이미지와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88서울 올림픽을 통해 이 모든 것을 확인했다.

 평창올림픽은 누가 뭐래도 문화올림픽, 평화올림픽이다. 88서울올림픽을 문화올림픽으로 성공시켰으니 30년이 지난 오늘, 평창의 겨울은 어떻게 빛날까 궁금했다. 지난 여름에 이어령 선생님을 만났을 때, 당신께서는 "평창올림픽은 미디어와 드론이 융합된 퍼포먼스를 통해 대한민국이 4차 산업의 강국임을 보여주자"고 했다. 서울올림픽 개막식을 총 연출한 당신은 평창올림픽을 읽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조력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막식장을 화려하게 장식한 메밀꽃밭, 600년 전에 만들어진 천문도의 영롱한 별자리, 1200여대에 달하는 드론의 대향연은 걸작이었다. 증강현실과 디지털맵핑, 최첨단 영상시스템 등 4차산업의 진수를 선보였다. 강원도 다섯 아이의 뗏목 풍경, 태극의 4괘를 표현한 신명나는 춤 등 우리 고유의 삶과 멋이 반영된 아날로그는 개막식을 더욱 값지고 빛나게 했다.

 그래서 올림픽은 스포츠가 아니라 문화다. 지역을 담고 역사를 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웅변하기 때문이다. 올림픽을 개최하는 국가에서는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비장한 무기를 선보이려 한다. 좋은 성적을 내고 안전하게 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한 울림과 느낌이 있는 축제를 만들려고 한다. 그래서 올림픽은 감동인 것이다.

 오랫동안 암울했던 남북관계에 희망의 씨앗을 뿌린 것도 평창올림픽의 값진 결실이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평창과 청와대를 방문했다. 미녀 응원단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주변국과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 진정성 있는 미래비전 등의 과제가 산재해 있다. 한 방울의 물이 모여 둑을 허물고 지형을 바꾸듯이 진한 땀방울이 모여 서로에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주는 것이 올림픽이다. 지금 이 순간, 가슴 뛰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바로 올림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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