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생각해 보건데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기다림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봄날 산언저리 한 모퉁이에서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피었다가 곧장 사라져 버리는 그 무엇인가를 잡기 위해 몸부림치던 날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 같다. 이제 봄의 문턱에 서서 봄을 기다리며 긴 겨울을 마무리하려 한다. 봄을 기다리는 심정을 애절하게 읊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 퍼시 비시 셀리(Percy Bysshe Shelley)가 쓴 <서풍의 노래>에 나오는 한 소절의 시구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를 생각하면서……. 그런데 나의 봄은 어지간히 오기 힘든 모양이다.

바람은 휘몰아치고 공기는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겨울은 엉거주춤하고 봄은 왠지 선뜻 발길을 내디디려 하지 않는다. 망설임과 기대가 엇갈리는 이 짧은 마음의 갈등이 요즘 날씨인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완연한 봄 자체보다는 겨울과 봄 사이의 간절기를 더 좋아한다. 봄바람에 겨울눈이 흩날리는 춘설의 계절에는 봄을 간절하게 기다리는 마음이 과감하게 자연의 품 안으로 뛰어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봄이 오리라고 믿어도 좋은 것인가? 만약에 그 하나만 확실하다면 겨울이라는 과거는 얼마든지 떨쳐 버리고 멀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과거를 뿌리쳐 버릴 순 없다. 우리 자신이 과거의 산물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날의 모든 이야기들이 유령처럼 우리를 그렇게 붙들고 있는 셈이다. 계절 또한 그런 면모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도 봄이 오기가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런 것 같다.

겨울에서 봄으로 옮아가는 이 시기는 만물이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펼 무렵 모든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계절이다. 지붕 위에서 한가로이 뒹굴던 눈이 제 풀에 녹아 처마 끝에서 흘리는 눈물의 속삭임이 봄을 느끼게 한다. 아니 봄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속절없게 그리고 끝없이 돌아가는 윤회라고는 하지만 그 윤회 속에서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한 순간을 손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꽃이 피는 시간이면서 향기의 계절이다. 그래서 봄은 우리에게 환희의 찬가를 부르게 해주며 철학의 많은 소재들을 불러 일으켜 준다. 그런고로 생명의 경이와 신비감을 일으키게 하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봄날의 숲속에서 솟아나는 생기와 힘은 우리에게 도덕적인 선과 악에 대하여 어떤 현자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누군가가 말하였다. 문득 나의 봄이 내 가슴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내 가슴의 고동소리는 밤이 깊어지면 더욱 커지는 시계의 초침 소리처럼 봄이 다가올수록 더 크게 울릴 것 같다. 그러한 이유로 마음이 저리다. 왜 이렇게 마음을 조이며 해마다 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비록 내 삶의 세월을 사는 나그네의 그것과 같을지라도 너무나 많이 기다렸기에, 너무나 많은 날들을 헛되이 보내 버렸기에 이제는 그 이유조차도 희미해 질 법도 하것만 또다시 내가 기다리는 봄의 의미가 우수처럼 풀려나갈지 궁금하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는 사실상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아무리 어둡고 막막할 지라도 참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적인 시구이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둡고 추운 긴 시간의 터널을 벗어나 뜨겁고 새로운 사랑과 진리의 온기를 받고자 아픔과 기다림의 고동소리가 다시금 내 가슴에 크게 울려오기 시작한다. 봄은 나에게 잊은 지 오래인 내 젊은 날의 소상을 일깨워 준다. 그러므로 지금 나는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기다릴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