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황종환 한국자산관리공사 대외협력위원]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나고 이제 봄이 완연하게 찾아왔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꽃이 강변길을 노랗게 수놓으며 아이처럼 순전한 미소를 지으며 맞이한다. 노란 꽃과 빨간 꽃들이 지천에 피어있는 강가에서 시원스러운 봄바람을 맞으며 다사롭게 걸어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며칠 전 손자는 집 근처 어린이집 등원 순서를 오래 기다린 끝에 반가운 배정 통보를 받았다. 예비소집에 다녀와서 노란색 가방을 양 어깨에 둘러매고 춤추듯 뛰어다니며 천진난만하게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에서 봄날의 희망을 보았다.

최근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관심사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는 100조원 이상의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연간 출생아 수는 최악의 수준인 35만 8천여 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4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발표가 있었다. 지금까지 정부 정책이 출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사람이 태어나 장성하고 죽음에 이를 때까지 생애 전 과정과 관계된 복잡한 문제를 총체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 정책 실패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일반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정도의 개인적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최적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자는 두 돌이 갓 지난 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 손자 바보처럼 자주 안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냥 행복감을 느낀다. 1980년대 중반 결혼할 때만 해도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슬로건이 강조되던 때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혼자 자라는 자식이 외롭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하나 더 낳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결혼 전만 하더라도 아이를 다섯 명 정도 갖고 싶다고 농담처럼 평소에 자주 말하곤 하였다. 그런데 요즘 생각이 바뀌었는지 둘째 소식은 깜깜 무소식이다. 며칠 전 둘이서 식사하는 중 둘째에 대한 물음에 미소만 지을 뿐 묵묵부답이었다. 한참 후 자신은 아이를 정말 좋아하는데 현재 상황에서 양육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 고민이라고 하였다. 더 이상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말과 다름없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손주를 돌본다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와 기쁨의 대상이다. 하지만 학업을 마침과 동시에 결혼하여 출산하고, 직업 특성상 휴일과 밤늦은 시간까지 일터에서 수고하며 배우는 과정에 있는 아들 부부의 입장에서 보면 일과 양육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요즘 세태에 시댁이나 친정에서 손주를 돌보는 일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할지라도 대신 수고하며 고생하는 부모에게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선뜻 아이를 갖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한편으로 마음 편하게 지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지난 달 끝난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나이 어린 선수들의 의젓하고 성숙한 모습과 행동을 보면서 많은 부분에서 기성세대 못지않은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각고의 노력으로 대회에 참가하여 결과보다 경기를 즐기면서 행복해 하는 모습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격언이 있다. 인생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미래가 훨씬 풍부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의 삶 자체를 진정으로 즐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좋아하는 일만 해서는 행복하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사회분위기 탓이 아닐까 싶다. 처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참으면서 삶 자체를 즐기는 길 수 있는 여유로움을 소망한다. 사십대 초반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강변을 달리며 새로운 힘을 얻었던 선한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아래 개나리꽃과 벚꽃이 만개한 산책길을 손자와 손잡고 함께 미소 지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보는 설렘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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