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김재영 전 청주고교장·칼럼니스트] 꽃샘추위가 오는 봄을 시샘하더니 오랜만에 교외를 달리다보니  개나리가 만발하고 진달래가 선을 보이고 지난주에 서해안을 달리다 보니 눈비가 내려 산들이 겨울모습을 보였는데 봄기운이 완연하고 초여름 같은 날씨이다.

독일의 시성 괴테는 "희망이 있는 곳에 행복의 싹이 움 튼다"고 했다. 지루했던 겨울을 보내며 우리는 곧 봄이 오리라는 희망 속에 추위를 이겨내며 생활해 왔다.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어렵고 힘든 일을 이겨내고 내일에 대한 기대 속에 살아가고 있고 힘들고 어려울 때는 고향을 생각하며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린다.
 
객지로 떠난 자식을 위해서 장독대에 정한수 떠놓고 빌어주시고 석탄일이면 절간을 찾으시어 불공을 올리시던 어머니. 흐르는 물과 같은 게 세월이요, 채근담(菜根譚)에는 "부싯돌 불빛 같은 게 세월"이라고 했거니와 이제 할아버지 되어 멀리에서 생활하는 자녀들의 생활을 걱정하게 되고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의 모습을 보며 7남매를 키우시며 어려운 시절 집안 살림도 힘드신데 자식을 위해서 밤을 낮 삼아 살아오신 어머님, 북풍한설 속에 홀로 지내신 유택(幽宅)에도 이제 봄빛이 완연하고 꽃이 피고 새들이 지저귀면 외롭지 않으시겠지.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님의 은혜를 안다고 했던가. 생각할수록 숙수지공(菽水之供)하지 못한 불효자는 뉘우침 속에 또 봄을 맞게 되고 고향을 생각하게 된다. 20년 전에 어머님 여의옵고 12년 전에  아버님께서 어머님 곁으로 가셨으니 불효자는 후회만 남는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려 어린 시절에 초등학교 5학년까지 살던 집터를 둘러보았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했던가. 내 살던 옛집이 밭으로 변하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 모두 고향을 떠난 채 내 살던 옛 모습 찾을 길 없고 동산에 조부님께서 난정(蘭亭)이란 정자를 세우시고 일제의 암울한 세월에 팔도유생들과 시작(詩作)을 하시며 일제치하의 어려운 시절을 보내셨는데 세월 따라 동산은 새 간선도로에 밀리고 고향을 지나는 나그네의 심정이랄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회남자(淮南子)에 생기사귀(生寄死歸), "산다는 것은 잠시 머루는 것이요, 죽는 것은 본집으로 돌아감과 같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제 고희(古稀)의 고개를 넘긴지 오래이니 울만이 "청춘(靑春)"이란 시(詩)에서 "청춘은 어느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라는 말을 위로 삼아 인생은 70부터 라는 기대 속에 희망을 갖고 새봄을 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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