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최고의 예술은 자연이다. 인간의 모든 예술행위는 자연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예술의 소재를 얻고 영감을 찾는다. 공룡같은 도시의 사람들은 오늘도 본질을 찾아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각다분한 삶의 찌꺼기를 토해내고 새로운 도파민을 얻는다. 자연은 언제나 정직했다.

마불 이종국 작가는 삶 자체가 자연이다. 예술가의 삶이 거대한 자연 그 자체다. 그가 살고 있는 벌랏마을은 청주의 오지 중에 오지다. 숲과 계곡을 사이로 시골집이 두세두세 모여 있다. 바람과 햇살과 꽃과 물길이 한유로운 곳, 여기야말로 문명의 저편에서 생명을 찬미하는 낙원임을 묵상한다.

마불은 그곳에서 닥나무를 심고 키우며 한지를 만든다.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 비단보다 더 귀하고 오래가는 한지를 만든다. 송나라 제일의 시인 소동파도 고려의 닥종이를 즐겨 썼다. 99번의 손길과 마지막 100번째에는 장인의 혼을 담아 만드는 한지다. 20여 년 전 마불이 벌랏마을에 들어갔을 때는 닥나무 종이를 만들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한지뜨기 명맥을 이어온 어른 한 분이 생존해 있었다. 닥나무를 심고 기르며 한지 만드는 기술을 연마했다. 그 때는 오직 한 가지. 한지의 본질과 자연이 좋아서 시작했다.

한 일(一)자를 10년 쓰면 붓끝에서 강물이 흐른다고 했던가. 마불의 작품은 한지의 기능과 단순성에서 아트상품으로, 예술성 높은 작품으로 새롭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한지라는 하나의 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자연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삶과 문화와 교육이 융합하는 독창적인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만든 한지는 시골길에서 만나는 쑥부쟁이처럼 정겹고 따스하며 향기롭다. 꿈꾸는 새와 나비가 되고 벌랏의 풍경이 되고 대청호의 사계(四季)가 된다. 조명, 부채, 노트, 설치미술…. 그래서 마불의 한지는 자연이다.

10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즐겨 사용했던 분디나무(산초나무) 젓가락도 마불이 재현했다. “12월 분디나무로 깎은 젓가락, 내 닢 앞에 놓았더니 남이 가져갑니다. 아으 동동다리.” 아, 얼마나 시리고 아픈 사랑인가. 마불은 분디나무로 이야기가 있고 생명이 있으며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젓가락을 만든다. 젓가락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다니, 젓가락 하나로 세계가 감동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마불에게 자연은 용기이자 창조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자연과 인간 모두 자신들의 부산물을 배출한다. 자연은 자정 능력이 있어 이를 정화하고 새로운 생명으로 잉태시킨다. 그 부산물이 바로 녹조다. 사람들은 녹조가 애물단지라고 터부시한다. 물을 가두었기 때문이고, 그 속의 녹조가 부패하기 때문이다. 마불은 대청호의 녹조를 탐구했다. 닥나무 한지보다 더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시간과 공정도 빠르고 견고하며 응용력이 뛰어났다. 그릇을 만들고 항아리를 빚었다. 회화성 높은 문화상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마불은 과학과 예술, 자연과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선을 갖고 있다.

마불에게 문의는 최고의 자연학교다. 그곳의 풍경, 그곳의 소재, 그곳의 사람들 모두가 교재이고 경전이다. 도시의 아이들, 도시의 시민들에게는 가슴 설레는 꿈을 갖게 한다. 꿈나무토요학교, 도시농부학교 등 그가 만든 자연학교는 언제나 진한 감동이 되었다. 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현장은 언제나 처녀성을 갖고 있다. 자연의 내밀함을 담고 품으며 새로운 생명의 온기를 만든다. 우리의 삶에 젖고 스미며 물들게 한다. 이것이 진정한 예술이고 미학이다. 마불은 오늘도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가슴 뛰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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