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지금은 잠시 나와 있지만 십년 넘게 구룡산-매봉산 자락에 살았다. 우연히 아파트 건너편 등산로를 발견한 뒤로 종종 등산을 가곤 했다. 언젠가부터 이 산에서는 나름 난코스인 148미터 화청봉 정상 근처 한 나무에 팻말이 하나 걸려 있었다. 눈길이 팻말에 스치는 순간 생각이 그 문장에서 멈췄다. 팻말에는 "창조하는 일에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는 펜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특히 '신성한'과 '긍정'의 신선한 결합에 떨림이 느껴졌다. 그런데 '신성한 긍정'은 기억이 나는데, "창조하는 자"였는지 "창조하는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창조하는 데"였는지 헷갈리면서 정확한 문장이 궁금해졌다. 그 다음 등산에서는 문장 전체를 눈에 담아왔다. 잊을만하면 다시 그 문장과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누가 했는지 몰랐는데, 최근 혹시나 하고 검색해보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한 말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책을 읽기는 했어도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아, 이 문장을 찾아보고 싶어 책을 다시 읽어보았다. 니체가 말하는 정신의 세 가지 변화 부분에 그 문장이 나왔다. 내가 읽은 번역에는 '신성한 긍정'이 '성스러운 긍정'으로 되어 있고 표현도 조금 달라 읽고도 모르고 넘어갔다가 다시 되짚어가며 읽으며 겨우 찾았다.

 니체에 의하면 우선 낙타가 무거운 짐을 지고 가듯이 인내심 많은 정신은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지고자 한다. 하지만 정신은 낙타에서 변화하여 사자가 되고자 한다. 창조를 위한 절대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사자와 같은 강인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은 사자에서 멈추지 않고 또 다시 변화하여 아이와 같이 되고자 한다.

 자유를 쟁취한 강인한 정신에게 창조를 위해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아이와 같은 천진무구함인 것이다.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닌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서는,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이 바로 그 문장이다. "신성한 긍정"은 정신에 궁극적으로 필요한 천진무구함과 같은 것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누가 한 말인지도 모르는 채 문장 하나가 이토록 강렬할 수도 있구나 감탄하며 외운 문장이 니체의 문장이었다니, 새삼 니체의 강하면서도 천진한 정신의 숭고함에 그리고 그 정신성을 고스란히 녹여내는 군더더기 없는 표현의 약동감에 감동을 받았다. 나의 정신에도 부디 강인한 인내와 활개 치는 자유, 절대 긍정의 천진함이 회복되길 빈다.

 빛바랜 니체 문장을 마지막 본지도 벌써 몇 년 전, 아직 남아있을 리가 없건만 문득 아직도 팻말이 매봉산에 걸려 있는지 궁금해져 오랜 만에 내 몸이 기억하는 매봉산 코스를 따라 걸었다. 아카시아 향이 온 산에 번져왔다. 혹시나 하고 팻말이 있던 자리를 둘러보았는데, 없다. 빛바랜 펜글씨 문장은 이제 없지만 그 정신은 내 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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