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대한민국 춤계의 거장 송범(1926~2007). 그의 이름 속에는 불멸의 향기가 있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 쏟아지는 햇살의 눈부심이 있다.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젖고 물들며 스며든다. 그리하여 송범은 우리 가슴에 시가 되고 그리움이 되며 꿈이 되었다.

 청주 사람들은 송범에 대한 애틋함이 더욱 크다. 그가 청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고, 근현대 한국 춤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형식과 장르를 개척했다. 국립무용단 창단의 주역이었고, 단장을 역임하면서 창작 무용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춤 세계에 들어가면 고립무원(孤立無援)이요,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나는 춤과의 인연이 멀다. 몸치다. 어려서부터 춤 잘 춘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했고, 애써 춤을 배우거나 즐기려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엔 나이트클럽에 가는 게 죽도록 싫었다. 밀폐된 곳에서의 현란함도 적응되지 않았고 친구들이 춤추러 무대로 나가자고 할 때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춤이라는 화두가 나오면 뒷걸음질 칠 정도였다.

 문화현장에서 축제 등의 콘텐츠를 개발하면서부터 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되었다. 말로 다 할 수 없고, 글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알았다. 그 말과 글의 무위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이 바로 몸짓이다. 몸짓은 정직하다. 뱀의 혀가 아니고, 펜의 힘도 아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행위다. 그 몸짓이 춤이라는 예술이 되었을 때는 더욱 정직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 놓는다. 그래서 춤은 최고의 언어이고 예술이며 자연이다. 삶이고 경전이며 철학이다.

 얼마 전 중국 닝보시 방문길에 호텔 골목을 어슬렁거리다가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청주의 중앙공원보다 조금 더 큰 규모였는데 그 곳의 시민들 표정과 행동에 시선이 머뭇거렸다. 연 날리는 사람, 운동을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공원의 사람 풍경이 신묘했다. 춤의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나는 그곳을 기웃거렸다. 여러 팀의 남녀가 짝을 짓고 춤을 추고 있었다. 춤추는 사람은 물론이고 구경하는 사람 모두 정겹고 한가롭다. 중국 사람들의 삶에 문화가 젖어 있고 자유로움이 가득하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지난해 말 청주연초제조창에서는 세계 50개국의 공익활동가들이 모여서 '세계문화대회'를 개최했다. 일종의 열린캠퍼스 형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자신들이 빚고 있는 꿈을 선보였다. 3일간의 짧은 여정은 참석한 모든 이의 가슴에 진한 향기를 주었다. 경직되고 획일적인 공간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스스로 관심 있는 장르와 코너에서 자신의 꿈을 소개하고 타인의 활동을 경청하는 형식이었다. 폐막의 장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학교가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이라며 모두들 아쉬워했다.

 춤의 무대는 언제나 아름답고 숭고하며 건강하다. 경쟁의 시련에서 상생의 미덕으로 가는 길이다. 서로가 하나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음악과 디자인, 영상과 디지털 등 다양한 장르가 만난다. 시대의 정신을 담고 삶의 이야기를 반영한다.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이 현실인 세상을 가능케 한다. 춤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예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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