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식 미즈맘산부인과 원장

[주명식 미즈맘산부인과 원장] 5월의 첫 주, 지방으로 출장을 가던 중 근래 N사에서 나온 게임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지방으로 내려가는 2시간 내내 아이는 그 게임기를 손에 놓지 않았고 부모는 편하게 꿈나라에 가 있었다. 처음에는 기기가 휴대성이 높다는 점에서 놀랐지만, 추후에는 저 기기가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에게 건네진 이기(利器)ㅡ실용에 편리한 기계나 기구ㅡ가 아닐지 의심이 되었다.

 필자가 아이를 키워낸 90년대의 어른들은 장난감과 게임을 사주더라도 자신의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유익하고 도움이 되는 걸 사주고자 노력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이가 집에서 게임을 하더라도 '테트리스'를 통해 조금이나마 두뇌가 발달하기를 바랐고, '부루마블'을 하면서 아이가 수도 하나라도 알기를 간절히 원했던 고상한 생각을 했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장난감과 기기들은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판타지(fantasy)만을 선사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이에게는 잠시나마 내가 모르는 세상 속으로 갔다 올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하고, 부모들에게는 아이라는 현실 도피를 하게 되고 휴식이라는 세계로 잠시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장난감은 모두(冒頭)에서 밝힌 바, 단순한 이익을 위한 이기(利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그 장난감을 통하여 조금의 상상력을 펼칠 줄 알아야 하며, 추후 비전에 대해 꿈꿀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레고와 퍼즐이 좋은 장난감으로 추앙받는 것은 자신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발휘할 수 있으며, 고민을 하면서 자신의 무력함과 부족함을 알아간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세상이 척박해지고 일이 바빠지는 한국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장난감을 사줘야 하는 임무가 생겼고, 아이들은 이것을 모아야 하는 소유욕이 생겼다. 심지어 그 단순하다는 '재미'도 아닌, 그냥 모으면 사라져버릴 수집욕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게 되면 그리고 그 수집욕이 끝나게 되면 그 아이의 옛 장난감들은 그 아이의 머릿속에서 폐기처분된다.

 그렇다고 필자가 이 시대에 아이를 다시 키운다고 가정했을 때, 옛날의 테트리스와 레고들을 아이에게 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엔 아이들을 위해 나오는 장난감과 기기들도 변했지만 그것을 사주게 되는 세상도 변하고, 또한 부모들도 변했다는 복잡 미묘한 슬픈 감정만을 남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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