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박기태 건양대 교수] 현재 우리 사회는 경쟁의 이념을 넘어 ‘살아남기(survival)’ 열풍에 휩싸여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초여름의 더위가 우리의 옷깃을 촉촉하게 적시는 이때 우리 사회를 사로잡는 살아남기 열풍의 사회적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살아남기 열풍을 어떻게 봐야 할까를 한번쯤 고민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 같다.

사실 ‘서바이벌’이라는 표현은 조금은 어눌하게 느껴지며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사투를 벌이듯 경쟁하는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어려서는 부모의 의지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남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청소년기에는 좋은 성적을 얻어 타인들이 부러워하는 명문 대학에 진학하여 학점과 취업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해야 하며, 비로소 취업 후에는 승진과 더불어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해도 흔히들 십 년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과연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인류가 생존의 위협에 맞서 진화한 절차는 ‘서바이벌’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애써 그 자체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휴머니즘과 인류애를 어떻게 펼쳐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심오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서바이벌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문명사가인 로제 카이와(Roger Cailois, 1913~1978)는 그의 저서《놀이와 인간》에서 놀이의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유형 가운데 하나로 경쟁을 말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경쟁의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은 놀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한 까닭에 열심히 노력을 해서 좋은 직장을 얻는다고 해도 끝까지 생존하리라 예측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며, 우리의 삶이 불확실해질수록 서바이벌은 어려워지고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럴수록 우리 사회는 목마르고 벌거벗은 욕망들이 처절하게 무형의 것에 갈증을 느끼는 정글로 변해 갈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정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하게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 하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서바이벌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규칙(Rule)의 공정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현실의 불확실성은 그런 규칙이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불공정하게 작동할지 모른다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정한 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사람들은 사회의 현실에 대한 분노를 투영하게 되고, 불화를 조장할 것이다. 탈법과 비리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권력층과 부자들, 갑 질 논란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졸부들, 그리도 언제나 힘 있는 자들의 편에 서는 사법부 등 현실에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훼손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이유로 그것에 대한 분노는 대상도 불분명하고 구체적이지 않으며 공허한 느낌마저 든다.

‘살아남기’ 시대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본능을 자연스럽게 발산하지 못하고 참아야 하며, 경쟁에만 몰두하는 것에 우리 고뇌의 싹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야심과 욕망 때문에 ‘살아남기’의 이면에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 두었던 지혜를 모순덩어리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모순과 고민에서 벗어날 길이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규칙의 공정성을 작동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불행을 행복으로 전환시킬 현명한 지혜를 기대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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