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2018년 6월 23일 충청권을 대표하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타계하였다. 이로써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로 대표되던 정치근현대사의 일명 '삼김시대(三金時代)'가 막을 내린 것이다. 김종필 전 총리는 5·16군사쿠테타에 참여한 이후 초대 중앙정보부장에 취임했지만 공화당의 내분으로 정계를 은퇴했다가 1971년 공화당 부총재직을 맡고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 6월 제11대 국무총리에 취임함으로써 정계에 다시 복귀했다.

 1979년 12.12 쿠데타 이후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의 정치활동금지법에 의해 공화당은 1980년 10월 27일을 끝으로 해산되었고, 김종필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공화당계와 유신정우회계 인사들은 한국국민당을 조직하였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및 구 3공화국 유신 인사들에 대한 부정축재 혐의 처벌 등으로 6월 항쟁 이전 신군부가 물러나기 전까지 충청도와 수도권 일부, 전국구 몇 석에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 이후 3당 합당, DJP연합으로 정치의 중심무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61년 5월 14일 강원도 인제 보궐 선거에서 처음으로 정계에 데뷔하게 되지만, 곧 이어 닥친 5.16 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되어 의원직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1963년에 민주당 소속으로 목포에서 제6대 국회의원에 선출되어 본격적으로 정치에 복귀하였고 야당의 지도자급 인물이 되었다. 또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54년 28세의 나이에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데, 이후 김대중 대통령과 더불어 군부 독재 시대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김영삼은 박정희 정권 시절 초산 테러 사건 등의 탄압을 받았으며, 1979년 10월의 미국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어 의원직 제명 파동이 일어났고, 이것이 부마항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1990년 3당합당과 1997년 DJP연합은 내각제 개헌안을 합의하며, 이루어졌으나, 이는 불발되고 대통령제를 유지하며 일명 '문민의 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IMF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고, 인권의 성장, 남북정상회담 등이 있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군사 쿠데타의 주역이었다는 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닥친 IMF위기,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북송금 등 안타까운 사건들이 있었지만,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안에 각자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80년대부터 2000년대 흘러간 영화나 음악을 들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김종필 전 총리의 타계소식을 들으니, 그분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별개로 내 젊은 날들이 스쳐지나가며 마음이 스산하다. 어찌되었든 삼김시대(三金時代)는 종말을 고하나, 대한민국의 희망의 역사는 계속 멈추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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