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누구일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불모의 땅에 돌탑을 쌓은 것일까. 무심천을 걸을 때마다 되우 궁금했다. 언제부턴가 돌탑이 하나 둘 눈에 띄더니 수백 미터의 길옆에 돌탑이 도열하기 시작했다. 누군가 하상도로 옆의 풀섶에 나뒹굴던 돌을 모아 탑을 쌓은 것이다.

석양에 온 도시가 붉게 물든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길을 나섰다. 딸과 함께 바람의 결을 타고 이랑져 흐르는 무심천을 따라 걸었다. 방서교를 지나면서부터 작은 돌탑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돌탑은 크지도 않고 높지도 않다. 하나씩 쌓아올렸는데 한 개의 돌탑마다 20여 개 안팎의 크고 작은 돌들이 키재기를 하고 있다. 제 멋대로 생긴 돌들을 쌓아 올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비바람 불고 눈보라 쳐도 끄떡없으려면 무게의 중심과 바람의 흐름까지 꿰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성한 잡풀 사이로 길게 늘어선 돌탑 풍경을 즐기며 걷던 중, 허리 구부린 채 돌을 주어 하나씩 쌓아 올리는 사람의 실루엣이 얼핏 스쳤다. 달려갔다. 인사할 겨를도 없이 무슨 연유로 돌탑을 쌓는 것이냐, 언제부터였느냐, 몇 개나 되느냐, 앞으로도 계속 돌탑을 쌓을 것이냐 등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60대 전후로 보이는 구릿빛 중년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례한 내 질문에 화답했다. 이런 저런 번잡한 마음을 비우기 위해 두어 달 전부터 돌탑을 쌓기 시작해 500여 개 정도 쌓았는데 1,000개가 될 때까지 쌓을 것이라고 했다. 돌탑을 쌓는 시간은 마음을 비울 수 있어 좋고, 무언가 기쁜 일이 다가올 것 같아 행복하다는 것이다. 여러 개의 돌들을 모아서 쌓지 않고 하나씩 올려 쌓기 때문에 집중력과 중심잡기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구린내 나는 일상, 잡다한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삶의 아픔과 시련을 이곳에서 하나씩 부려놓고 있구나. 탑을 쌓는 곡진한 마음으로 새로운 꿈을 꾸고 있구나. 갑자기 중년의 뒤태에 빛이 나기 시작했다. 석공의 귀재는 돌을 깎아 새를 만들어 하늘로 날려 보낸다고 했던가. 돌을 쌓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듬고 가지런히 하며 새날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처럼 불모의 땅에서도 희망은 자란다. 무심하게 시작한 일일지라도 그 일에 집중하고 전력질주하면 값진 결실을 얻을 수 있다. 희망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소한 풍경속에 깃들어 있다. 다만 그곳에 마음을 주지 않았을 뿐이고, 희망을 빚고 다듬지 않았을 뿐이다.

집중과 몰입의 힘이 얼마나 무섭고 값진 것인가는 삶의 현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술의 경우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고 엄연하다. 세계적인 예술가나 과학자는 모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새롭게 개척하며 창조와 혁신의 길을 선택했다. 집중과 몰입, 그리고 자신만의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나의 작은 실천이 세상을 빛나게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심천에 쌓아올린 돌탑은 개인의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이 길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고 잔잔한 감동과 사랑으로 다가오지 않던가. 그 일이 고되고 상처 깊을지라도 옳은 것에는 언제나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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