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명식 미즈맘산부인과 원장

[주명식 미즈맘산부인과 원장] 나이가 50이 넘고, 아이들은 장성해서 타지에서 버젓이 잘 살고 있지만, 이렇게 무덥고 장마가 지나갈 때 즈음이면 미안한 일 두 가지가 생각나곤 한다. 아이가 6살 때 비가 억수로 많이 오던 때였다. 그 때는 썬루프가 달린 차가 나온지 얼마되지 않을 때였는데 워낙 비를 맞기를 좋아했던 아이이기도 했고, 처음보는 썬루프가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썬루프를 열고 조수석에 앉아 가만히 비를 맞는 것이다. 안그래도 습도가 높았고 처음 산 차 내부에 비맞는 게 너무 싫었던 나머지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몇 분동안 고래고래 소리쳤던 것이 기억난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입학하던 시절. 담임선생님께서 반장이 되고 싶은 아이들에게 손을 들라고 했던 모양이다. 아이는 집에 와 손을 들지 않았다고 나에게 말했고 나는 다시 선생님에게 아이를 돌려보냈다. 아이는 우산도 무용지물이 될 정도의 비를 뚫고 다시 학교에 반장선거에 나간다고 했지만 아이는 학창시절 내내 ‘과학부장’이라는 직책 외에는 반장이라는 일을 해보지 못했다. 그 아이가 몇 년 내내 부모의 기대감을 채우기 위해 떨어진 반장선거에서 느꼈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아이에게 제대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던 것은 필자가 19세기 덴마크 철학자인 ‘쇠렌 키르케고르’의 책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차이를 인정하는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철학자이다. 그는 마치 나에게 ‘비와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아이와 ‘앞에 나서기를 혐오’하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지금도 비가 오는 날 썬루프를 열고 나의 차 시트가 젖는 걸 싫어하고, 아이가 아직도 어디에 가서 리더십을 발휘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러나 아이는 나의 관점과 욕심을 주입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으로 무마시키기에는 아이가 평생 받게될 상처와 부담감은 어마어마하다. 엄마들은 안 그래도 무덥고 습한 날에 아이를 안거나 유모차에 끌고다니는 끔찍한 여름이다. 게다가 아이까지 말을 안 듣거나 조금의 잘못을 하게 되면 그 짜증은 오롯이 아이에게로 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의 관점적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건 탯줄을 자른 칼을 원망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면 세상에서 도태되고 여러 관계사이에서도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여름만 되면 아이에게 미안해지고 또 고마워진다. 아무것도 몰랐던 아빠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해주지 못하고 화를 냈던 것에 대한 미안함과, 그 차이와 다름을 촉각적으로 깨우쳐주어 좋은 아빠로 한 걸음 다가가게 해준 고마움 말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