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지난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독서동호회 회원들과 원주에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을 다녀왔다. 작가 박경리에 대해서는 대하소설 '토지'를 쓴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현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부터 작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6년간 집필되었단다. 2백자 원고지 4만여 장과 등장인물이 7백여 명이나 된다니… 진열되어 있는 원고지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토지'는 최참판댁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19세기말에 시작하여 해방시기까지, 하동의 평사리를 시작해 만주, 서울, 도쿄 등 방사선형으로 뻗어간 대하소설이다.

'토지'를 접한 사람들은 먼저 그 방대함에 압도되고, 근대에서 현대까지 한국인의 삶을 규정한 파란과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빚은 명품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했다. 이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남자에게서 남자로 이어지는 재래 혈통계승의 인습을 깨고, 여성에서 여성으로 이어지는 여성혈통계승의 가족사를 내세웠다는 점이다.

또 스물여섯 해 동안 참척(慘慽)의 아픔을 속으로 삭이고, 고독과 병마와 사투를 벌이며 거둔 작가 박경리의 전리품이라 했다. 이런 전리품이 남겨지기까지 작가의 가족사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로 인하여 편모슬하에서 자랐고, 한국전쟁 중에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까지 잃었다. 일제강점기 등의 고독, 가난, 결코 지워지지 않는 피멍 같은 것들이 박경리 문학의 기저(基底)를 이루는 것들이란다.

문학공원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토지'를 읽고 싶은 충동과 함께 그간 천 권이 넘는 분량의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대하소설을 읽지 않음이 많이 부끄러웠다. 많은 이들이 원고지분량이 방대하다하지만 바로'토지'전체 20권을 구입했다. 1권을 읽기 시작하니 다음 글이 궁금하여 놓을 수가 없다. 읽는 내내 많은 등장인물과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따로 메모를 해가며 읽었다. 미친 듯이 빨려들어 다 읽고 나니 미뤘던 숙제를 마친 듯 홀가분하다.

완독을 하고 나니 작가 박경리에 대한 존경심과 위대함에 가슴이 뻐근하다. "나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에 문학을 했으며 훌륭한 작가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인간으로서 행복 하고 싶었다."는 작가가 26년 동안 원고를 쓰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뼈를 깎는 맘으로 써 내려간 책을 필자는 단 몇 개월 만에 읽고 그 시대를 어렴풋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토지를 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백두산을 가게 되었다. 여행일정표에 토지의 무대였던 용정과 해란강이 있어 너무 흥분되었다. 책에 대한 감흥이 아직 남아 있어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필자는 백두산 천지를 본 기쁨보다 연길, 용정시내의 땅을 밟은 사실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지금 그곳에 그들은 없지만, 일제의 패망을 학수고대 하며 살았던 그들의 울부짖음과, 해란강에 돌을 던지며'선구자'를 부르던 조선의 젊은이들의 울음 섞인 절규가 먹먹하게 들려옴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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