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지금 우리는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표류하고 있다. 고난의 시대, 예측 불가능한 시대에 들어섰다. 어디 우리나라뿐이랴. 전 세계가 아나키적으로, 혼돈으로 가고 있다. 환경재앙, 경제의 불확실성, 4차산업, 그리고 평화…. 우리 앞에 주어진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머뭇거리는 자화상에 슬픔이 밀려온다. 그날 서울 평창동의 한중일연구소에서 이어령 선생님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위기의 한국, 표류하는 한국이 어떻게 가야할지 고심참담(苦心慘憺)의 심정으로 경청했다. 진보당 노회찬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날이었다. 남북 분단의 아픔과 이념의 상처를 담은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향년 84세로 타계한 그 날이었다.

이어령 선생님은 그날따라 유독 상심이 깊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땅의 희망을 위해 가슴 뛰는 일,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살아갈 날이 그리 많지 않았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일구면 좋겠다며 두리번거렸다. 대한민국이 갈등과 대립과 위기로 얼룩져 있다. 문화로 융성하고 창조적 역동성으로 세상을 누빌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아쉽게도 제대로 엮지 못한다며 가슴을 치셨다.

당신께서는 세계란 하늘에서 쏟아진 모든 가능성이라고 했다. 지금의 고난 앞에서 절망하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와 운명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당신은 오랫동안 세상에 없는 그 무엇을 만들며, 새로운 길을 개척해 오지 않았던가. 네 발로 다니면 편한데 수없는 시련과 아픔을 딛고 두 발로 일어선 기적을 생각하라. 인간이 그 어떤 생명보다도 도전과 창조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이다. 인간이기에 가야할 길이 엄연하다는 것이다.

한 곳에 몰입하는 것을 주목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주목의 정반대는 무엇일까. 유목이다. 유목은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세상속의 진주를 찾아내는 행위를 일컫는다. 그래서 주목과 유목의 조화로운 삶이 필요하다. 위기의 시대에는 세상의 현상들을 꿰뚫어 보는 혜안과 창조적인 열정과 자신만의 연장이 필요하다. 이것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책과 경험과 사색, 그리고 고난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누구나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달리면 모두가 1등이지만 세상사람 모두가 똑같은 일을 하면 불필요한 경쟁을 해야 하고 상처만 깊을 뿐이다. 베스트원(Best One)이 되려하지 말고 온리원(Only One)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삶을 찾아야 하고 개척해야 하며 가꾸어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만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 것이고, 후회 없이 살아야 죽을 때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이다.

언론인으로, 교수로, 장관으로, 문화기획자로, 문학인으로, 창조자로 살아왔기에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언제나 쓸쓸하고 고독한 외길이었다. 나와 함께 손잡고 희망의 세상을 향해 나아갈 사람 어디 없는가. 말과 함께 달리지 말고 말 위에 올라타 세상을 호령할 사람 어디 없는가. 한국인시리즈를 완성해야 하고, 생명자본의 가치를 세계에 알려야 하며, 창조의 아이콘으로 멋진 세상을 만들고 싶은데 가슴 뛰는 사람 어디 없는가…. 이어령 선생님의 말끝이 흐려졌다. “저 여기 있습니다. 제가 그 길을 가겠습니다”라며 두 손 불끈 쥐었지만 나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갈 길 잃은 탕자처럼 폭염 속에서 진땀만 흘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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