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폭염이 쏟아지는 아스팔트 위에, 차들이 자체 열을 뿜어 대며 긴 대열로 늘어서 있다. 각자의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대략 북쪽 방향이라는 건 알 수 있다. 길게 늘어선 차들은 원인도 모른 채 서있다. 초침은 바지런히 움직이지만 우리는 꼼짝없이 서 있어야만 했다. 고속도로인지 주차장인지! 투덜대는 소리가 조금씩 커져 갈수록 에어컨이 열일 하는 거실에서, 얼음 동동 띄워 낸, 달달하고 시원한 수박화채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모두의 시간을 맞추느라 늦은 출발이다 보니, 세상은 이미 포효하는 태양의 발작에 달구어진 가마솥만 같다. 도로는 막히고 차안의 인구밀도는 높다보니 차의 에어컨도 역부족이다. 폭염을 피해 달아나는 수많은 인파들 속을 헤치고 나갈 마음이 점점 사라져간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일상을 탈출해 자연의 품으로, 더위사냥을 떠나자는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나온 길인데.

결국 우린 가까운 곳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자동차의 긴 대열을 빠져나와 지방도를 택해 익숙한 장소로 달려갔다. 아기자기한 지방도의 풍경은 마치 오솔길을 걷는 듯한, 매력이 있다. 기분들이 한결 나아졌다. 닷돈재의 계곡은 폭염과 가뭄 속에서도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발 담그고 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캠핑할 수 있도록 텐트촌도 마련되어 있어  이미 인파들이 북적이고 있었지만 조용하고 깔끔했다. 사람들의, 인식의 전환인지 아니면 규제의 결과인지 인파들이 북적임에도 불구하고 쾌적한 분위기였다.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며, 나긋나긋한 정들을 수다로 풀어냈다. 옆에서 초등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다. 한 아이가 잠자리를 잡아 물속에 넣고 꺼내지를 않는다. 별게 아니라지만 생명체가 아닌가! 살아있는 잠자리를 수장한다고 한다. 살아있는 잠자리를 그러면 되냐고 했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순간 우린 놀랐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된 일인가? 이순의 고개를 넘어가는 우리의 생각인가! 앞으로 각박하게 삶을 살아내야 하는 저 아이들의 생각인가! 참외, 복숭아 서리를 하며 어른들한테 혼쭐도 나고 교훈도 배우던 달달했던 추억을 떠올리던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스펀지 같은 저 아이들한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순간 막막했다.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생명의 소중함을, 아이들을 달래가며 친구들이 애를 쓴다. 물속에다 돌멩이로 잠자리 날개를 눌러 놓고 있던 아이는 소리쳤다. '아줌마 아직 살아있어요!' 아이의 목소리는 기쁨에 차 있었다. 혹독한 현실에서 풀려 난 잠자리는 날아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잠자리 한 마리의 희생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은 씨알하나 그 아이의 마음속에 심겨지는 일이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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