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상을 받고 돌아오는 내내 부끄럽고 미안했다. 이 상을 받아도 되는 것인지, 받을 자격이나 있는 것인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뒷짐 지고 먼 산 바라보며 살아오지 않았기에, 지역을 위해 머뭇거리지 않고 가슴 뛰는 그 무엇을 일구며 달려왔기에 주는 상이라는 생각으로 위로를 삼았다. 그러면서도 앞날이 더 걱정되었다. '지역혁신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을 것인데, 사회적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혁신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어 새로운 길, 가지 않은 그 길을 당당히 달려갈 수 있을지 상념에 젖었다.

대통령 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전국의 지역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선정한 '지역혁신가'에는 문화예술, 경제, 안전, 환경, 복지 등 다양한 방면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실천을 통해 값진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 50여 명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그들의 지나온 삶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쁨보다 슬픔이, 기회보다 위기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도망치고 싶고 주저앉고 싶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때로는 누군가가 희망의 손을 내밀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긴 터널 속에서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퇴로도 없다. 벼랑 끝에서 오직 자신의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주변의 핀잔과 삿대질과 발목 잡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이 모든 것을 딛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값진 결실을 맺은 사람들, 바로 지역혁신가들이다. 나 또한 그 중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으니 기쁨과 영광도 잠시, 무한한 책임감과 새로운 길이 내게 주어졌다.

시상식은 2018지역혁신박람회장에서 열렸다. 세계 각국에서 온 컬처디자이너들의 공감과 나눔의 장도 마련되었다. 컬처디자이너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새로운 꿈을 디자인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혁신가란 지역의 현장에서 지역을 아름답게 가꾸고 지역민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함께 모였으니 시상식장은 뜨거웠다. 열정 가득했다.

인류 최고의 시대는 르네상스였다. 르네상스를 통해 수많은 문화예술과 과학 등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콘텐츠가 쏟아지면서 삶이 풍요로울 수 있었다. 우리 민족에게도 르네상스가 있었다. 바로 세종대왕 시대였다. 그는 지식배양, 인재양성, 시스템 세 가지를 통치철학으로 삼았다. 세종은 노벨상에 버금가는 업적만 13가지를 만들었다.

이 때문에 나는 세종대왕 초정르네상스 콘텐츠를 발굴하는 일에 힘썼다. 초정10경이라는 스토리텔링 콘텐츠도 만들었다. 불 꺼진 담배공장에 문화의 불을 켜는 일에 매진했다. 공예비엔날레, 젓가락페스티벌 등의 국제행사는 물론이고 지역문화를 해외에 확산하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문화콘텐츠로 만드는 최전선에 있었다. 아픔이 왜 없었겠는가. 치열했던 그 현장에서 물똥을 싸기도 하고 당뇨로 쓰러졌다. 그렇지만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이제는 지역을 넘어 전국 곳곳의 현장에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이 신르네상스를 열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야할 길이라면 머뭇거리지 않겠다. 커터스 칼슨과 윌리엄 윌못은 '혁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진정한 혁신은 지금 당장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혁신의 장으로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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