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주 선문대 교수

 

[안용주 선문대 교수]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만인에게 공평함을 준다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득이되고 반대에 있는 사람에게는 허탈감을 줄 수도 있는 일이 세상사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중추절(仲秋節)이다. 천지만물이 소생(蘇生)의 기쁨을 누리는 계절이 봄이라면, 섭리에 따라 결실을 맺고 오곡 과실의 풍성함이 가장 돋보이는 가을을 품는다. 이번 추석은 왠지 더욱 각별함을 느끼게 한다. 1년 전 이맘때를 돌이키면 등골이 서늘하다. 갑작스런 사드배치와 극한으로 치닫는 남북미의 신경전 속에서 하루하루를 전쟁의 공포를 느끼며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으로 가슴을 졸였다.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수많은 유언비어들이 난무했고, 심지어는 미국인들이 철수를 준비한다는 루머들이 돌기도 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을 위정자라고 한다. 일본에서 들려오는 정치인들의 저속한 혐한논리에 혀를 차다가도, 가끔씩 감탄을 하게 된다. 저들의 논리는 논리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비속한 말싸움이지만, 일관되게 자국(自國)의 이익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어떤가? 말은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임진왜란 때 일본에 파견되었던 황윤길과 김성일처럼 당리당략이 판을 치고 사리사욕이 춤을 추는 느낌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러나 불과 1년 전 오늘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전쟁의 공포에서 숨죽이며 가슴 졸였던 기억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오늘(9월18일)은 참으로 역사적인 중추절 이브다. 문대통령님이 평양을 방문했고 굳은 악수와 다정한 포옹을 통해 우리가 참된 한민족임을 생방송을 통해 세계에 어필했다. 문대통령님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우리말로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국가수반이다.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행간을 읽을 수 있고, 얼굴 표정을 통해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존재다.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고 우리의 조상들과 수천의 외국 젊은이들의 한이 묻힌 이 땅에, 더 이상의 전쟁을 가져와서는 안된다는 필사의 마음들이 모여 오늘 두 사람의 포옹을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의 가족과 동포가 살고 있지만 우리는 그곳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 북쪽 땅을 밟을 때마다 미국의 용안을 살펴야 하는 신세다.

위정(爲政)이라 함은 정치를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의미가 우선이다. 당리당략(黨利黨略)이라 함은 평화와 안정된 시기에 당(黨)이 제시한 목적을 위해 상대편과 타협을 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국가가 불안한 시기에는 사심을 버리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함에도, 우리 정치인들의 모습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 정치인들이 보이는 자국을 위한 무비판적인 행태가 오히려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한 것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하게 만든다.

평양에서의 양국의 정상회담이 남측으로 북측에서도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 외국의 수반이 온다고 생방송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어쩌면 더 이상 외세에 의해 이 땅의 평화가 짓밟히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된다는 간절함이 양국 정상에게 비장함을 더해준 것이 아닌가 싶다. 손에 잡힐 듯이 화면을 가득 채운 북한 주민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세뇌받았던 뿔달린 괴물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설사 우리와 다른 억양, 다른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통역을 거치지 않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같은 민족임을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땅에서 평화를 되찾고 영구적 평화를 꽃 피울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큰 충추절의 풍성함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이 먹먹해진다. 평양과 서울을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는 오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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