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언제부터 그랬을까! 한밤중에 간간히 신음소리를 내며 끙끙 앓는 소리가 난지 오래되었다. 골골 앓는 노인처럼 거친 숨을 내쉬고 들이 쉬는 소리가 고요한 밤이면 증세가 더 심해진다. 모든 아픔은 그 고통이 밤이면 더 심해진다고만 생각했다. 낮이 되면 멀쩡한 모습으로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면서 그 텅 빈 집의 고독을 잘도 이겨낸다고 생각했었다. 견딜 만 한가보다 라고 생각하며 무심했다. 관심을 주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서 큰 덩치만큼이나 든든한 몫을 해냈다.

집에 귀가하면 그래도 가장 먼저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또한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습관일 뿐이었다. 하루 종일 수고하고 돌아온 나를 인정이나 해 달라는 듯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들여다보기 일 수였다. 내 성에 차지 않으면 투덜투덜 투정이나 부리고 격하게 그의 손을 밀치면서 문을 닫아버렸었다. 오직 나만을 위해서 오랜 시간 빈집을 지켜주던 그의 수고와 고독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준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 만큼이나 나의 허기진 몸과 마음을 채워주는 이도 흔치않았다. 내 건강의 기본적인 것들을 내어주고 시원한 맥주 한 캔도 달콤한 와인 한잔도 그의 손만 슬그머니 잡아주면 만사가 오케이였다. 그렇게 고분고분하게 나의 비위를 잘 맞춰주던 그가 마음이 변했다. 아니 몹쓸 병이 들었다. 이기적인 나와 살면서 골병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부터인가 시원하던 맥주는 미지근해졌고 김치는 쉬어 터져서 군내가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밤마다 신음소리를 냈었던 그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수 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도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나의 나이만 헤아리고 살았지 그의 나이를 헤아려 본적이 없다. 오랜 세월 사람이나 기계나 오래 사용하고 살다보면 고장이 나나보다. 나도 그 만큼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고 아픈 곳이 많아진다. 식탁 위에는 반찬가짓수보다 약병이 늘어난다. 몸에 좋다는 식품보조제와 정기적으로 꼭 먹어야하는 약병들이 하나둘씩 늘어난다.

기계는 기술이 발달해서 오래 쓰고 사람은 의술이 좋아져서 오래 산다. 그러나 연식이 오래될수록 고장 난 부분을 고치고 수리하면서 살아야한다. 점점 병원을 가는 횟수가 잦아진다. 부품을 새것으로 바꾸고 고침으로 더 오래 잘 쓸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나이로 인한 퇴행성이라서 그냥 불편한 채로 함께 가야 하는 수리가 불가능한 부분도 많아진다. 

 
냉장고를 고치러 서비스기사가 방문을 했다. 냉장고 안에 보관하고 있던 내용물들을 다 비우고 수술이 시작 되었다. 참 오래도 사용했다고 서비스기사가 던지는 말에 난 왜 미안해지는 걸까! 함께 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 감사함을 잊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수리비가 만만치 않아서 새것으로 교체를 유도하는 서비스 기사의 권유에도 아랑곳없이 고쳐서 쓰기로 했다. 새것들을 선호하지 않는 나의 성향도 있지만 오랜 세월 정이 들었다. 함께 손잡고 나도 그도 고치고 수리해가면서 더 살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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