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아직 남은 늦여름 햇살이 환한 주말 청주 이정골에 있는 신항서원을 찾았다. 가다 보니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들어선다. 네비게이션을 잘못 따라왔나 했더니 골목 끝에 아담한 용정동 미소 돌장승이 서 있다. 골목길로 안 왔으면 미소 돌장승은 못 보고 갈 뻔했다. 서원은 양지바른 언덕에 있었다. 마침 초등학교 1, 2학년 되는 아이들이 두 인솔자 선생님과 체험활동을 와 있었다. 아이들은 장난을 치고 뛰고 하면서도 선생님 설명도 열심히 듣고 있는지 질문에 씩씩하게 대답도 잘 하였다.

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마침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매미가 선비와 같다며 매미 五德(오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순간 몇 년 전(일기에 보니 2016년 8월 10일이다) 다산유적지에 있는 실학박물관에서 본 ‘2016년 경기청백리 특별전’ 전시에서 받은 부채가 생각났다. 부채 자체는 빳빳한 종이에 구멍이 하나 나 있는 별 특별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집에 가져왔다가 그냥 버릴까 하다가 부채에 적힌 매미 오덕 글이 또 보고 싶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차마 버리지 못하고 책꽂이 어딘가에 꽂아두었다. 잊고 있다 문득 신항서원에서 매미 오덕을 스치듯 듣게 되니 부채에서 다시 읽어보고 싶어 집에 와서 찾아보았다. 분명히 안 버렸을 텐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인다.

혹시나 해서 연구실 책꽂이를 둘러봐도 계속 안 보이더니 바로 어제 연구실에서 나타났다. 연구실 바닥에 깔아두는 매트를 여름동안 햇빛 안 드는 안쪽에 옮겨두었다가 어느새 햇살이 좋아 창가 쪽으로 매트를 다시 옮겨 놓고 창가에 기대앉는 순간, 창가 바로 옆 책꽂이 벽에 꽂혀 있던 부채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 온 것이다. 너무 반가워서 얼른 부채를 꺼내보았다.부채 위쪽에는 조선시대 청렴하고 깨끗한 관리들에게 부여하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인 청백리(淸白吏)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다. 바로 아래에는 중국 육운陸雲이 쓴 ‘한선부寒蟬簿’ 중 매미의 오덕(蟬五德)이 적혀 있다.

▲ 매미의 오덕이 적힌 부채

“머리 위 갓끈 있으니 학문이 있고 頭上有緌 則其文也/ 천지 이슬 마시니 맑음이 있고 含氣飲露 則其清也/ 곡식 먹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 黍稷不享 則其廉也/ 거처할 집 짓지 않으니 검소하고 處不巢居 則其儉也/ 오고 갈 때를 지키니 신의가 있다. 應候守常 則其信也”

진나라 시인은 어떻게 매미의 얼굴로 내려온 대롱에서 선비의 갓끈을 떠올렸을까? 매미에게서 선비를 떠올린 그의 참신한 발상 덕분에 매미는 청백리의 상징이 되었고 임금과 관리들조차 관모에 매미 날개를 달아 매미가 지닌 다섯 가지 선비정신을 늘 기억하고 삶으로 실천하고자 하였다. 부채 오른편 배경에는 조정규(1791~?)의 매미 그림이 있다. 우리 옛 그림에서도 매미는 작은 미물이 아니라 문, 청, 렴, 검, 신의 선비정신을 표현한다. 매미 날개를 모자에 붙여 매일 볼 수 없으니 그 덕이 새겨진 부차라도 늘 곁에 두고 보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다. 매미 오덕 때문에 마분지 부채를 다시 꽂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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