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기고
두레봉공원을 거닐며정종학 전 진천군청 회계정보과장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10.18  13:38:40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정종학 전 진천군청 회계정보과장]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다. 드넓은 들판에 노란 물결이 잔잔하게 술렁이며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불어넣는다. 넉살 좋은 가을은 우리 모두를 포용하는 반가운 길동무처럼 느껴진다. 모처럼 이웃 마실을 겸해서 혁신도시의 두레봉공원을 찾았다. 주민과 교육생들이 여가와 문화휴식을 취하며 즐겁게 행복을 누리고 있다. 가을의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있다.

두레봉공원은 차령산맥을 따라 길게 내려온 함박산 아래 광활한 혁신도시의 중심에 있다. 신도시를 상징하는 공원은 일산, 세종시, 오창과학단지처럼 주로 호수공원이란 공통된 명패를 붙였다. 우리처럼 신도시에 고유지명을 딴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사물과 자연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본 만큼 즐길 수 있는 듯하다. 두레봉공원은 원래 두촌리의 동그란 두리봉 주변 열두 동네를 어울러 부르는 두레지였다. 특이한 지명에다 그 지형 또한 묘하게도 마치 조선과 같은 형상을 떠올린다.

두촌리하면 오솔길의 대로로 유명했던 송상주막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살던 어떤 어르신내외는 행인의 주안접대는 물론 청수를 떠 놓고 과거보러 한양길에 오른 유생들의 합격을 기원한 전설이 전한다. 그 만큼 우리의 선조들은 선비를 깍듯이 떠받들었다. 가을 옷으로 단장한 공원을 감상하며 두레의 정의를 생각해본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아온 농촌 마을단위에서 힘든 일을 서로 협력하려고 공동조직을 구성 운영해온 것이다. 모내기를 마치면 풍년을 기원하고 풍물을 치며 신명나는 마을잔치도 벌어졌다.

아울러 두레정신에 대한 학문을 깊게 파고들어 가보니 고대의 선비문화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화랑정신과 새마을 정신 또한 두레정신을 이어온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의 교육은 항상 삶과 하나로서 실타래처럼 공존해왔다. 두레지의 유래비를 자상히 살펴보니 선견지명이 있는 조선 개국공신 후손들이 두촌에서 서생(書生)하였다. 그분들이 강론을 하였던 곳을 향교말, 강달말로 부른다. 이처럼 선비정신의 씨앗이 이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성장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웃 석장리에는 삼국시대 동아시아 최대의 철(鐵)제련소가 있었다. 그 유적지는 철 생산의 양성을 밝히는 중요한 문화적 가치가 충분하다. 철에 관한 다양한 기술발전으로 수많은 장인들이 거주해 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유전성인지 이곳 교육원(敎育院)의 특징은 지식인에 더불어 첨단과학과 IT문화 기술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이끌어갈 핵심역할을 담당할 엘리트 집단이다. 이런 분들이 지식기반사회에서 요구하는 현세의 선비와 장인으로 생각되고 있다.

두레봉공원을 도닐며 두레지에 대한 깊은 사색에 잠겼다. 우리고장은 이미 오백년 전부터 두레지에 교육의 터전을 다져놓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해왔다. 뿌리 없는 줄기 없듯이 유수한 교육기관의 입성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세를 타고 혁신도시에 패기 찬 젊은 세대가 구름떼처럼 몰려오고 있다. 진입로 길가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은 전입자를 환영하는 듯이 미소를 보내고 있다. 원주민들은 붐비는 손님 수발에 분주하며 생동감이 넘치고 있다. 울긋불긋 물든 두레봉공원은 마치 어떤 경축 공연을 앞두고 예행 연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비주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