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호강한 아이들

이제 며칠 후면 황금연휴가 시작된다. 오는 5월 1일 부터 시작해서 어린이날인 5일까지 연달아 논다.
그렇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 없는 것이 바로 얇아진 지갑 때문이다. 특히 늦둥이 아들 둘이 있는 내 입장에서는 5일인 어린이날에 가장 많은 돈이 들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사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어린이날이 의미가 있었다.

그래봐야 집에서 어린이 날이라고 특별히 챙겨 주는 것은 없었다. 다만 학교에서는 돈 좀 있는 학부모가 협찬해서 빵도 먹고 문구류도 선물 받아 모두들 입이 찢어진 날 이었다. 특히 그 때는 굶는 아이들도 많아 어린이 날에 나누어 준 빵의 맛은 우리들 세대에겐 잊지 못 할 맛 중 하나로 남아있다.

또 이 날만큼은 육성회비를 못 낸 아이들도 담임선생이 빨리 내라고 독촉하지 않았고 교장실에 불려 가지도 않았다. 육성회비 못 낸 아이들도 모두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의 어린이 날 노래를 함께 불렀고 '우리도 자라면 나라의 일꾼'이라는 2절을 부를 때는 그저 뜻도 모르면서 아니 하루하루가 살기 어려운 가정에서들 살고 있으니 우리도 자라면 나라의 일꾼 이라는 그런 가사가 마음에 와 닿을 리 만무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자라면 절대 안 굶으리'라는 가사가 있었다면 더 마음에 와 닿았을지 모른다.

이런 처지에서 자란 우리 세대들에게는 어린이날이라도 있어야 했다.워낙 못 먹었고 알아서 컸다. 형이 동생 돌봤고 방학에도 한 나절 나가 놀고는 집에 들어 와 먹을 것 찾아보고 밥 있으면 더운 물에 말아먹고 또 나가 노는 것이 모두 였다. 놀이 도구 살 돈이 없으니 놀이 도구 없이 놀 수 있는 술래잡기, 다망구,망까기 등이 놀이의 전부였다. 그럼에도굶주린 배를 움켜지고 공부했고 궂은 일 마다 않고 일해 가난에서, 굶주림에서 해방된 나라를 만들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너무나 호강하고 산다. 너무 잘 먹어 소아당뇨가 걱정이고 초등학생 조차 학교 다녀오면 영어과외, 수학과외, 영재교육 등 밤늦게 까지 배우러 다닌다. 월급의 반 이상이 아이들 교육비로 투입되고 있으며 우리들은 옷 못 사 입어도 아이들은 철마다 좋은 옷 사 입힌다. 외식조차 우리가 먹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원하는 식당을 간다. 할 수 없이 그 먹기 싫은 피자도 함께 먹어 주어야 하고 아이스크림까지 먹어주어야 한다. 완전히 아이들을 떠받들고 산다. 좋은 과외 교습을 위해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재력, 아이의 체력이 삼이일체가 되어 가정이 돌아간다. 온전히 어린이 세상이 된 마당에 어린이날 마저 공휴일이다.

이런 아이들에 비해 부모님들은 눈치 밥 먹고산다. 우리도 왕년엔 나라의 일꾼이라는 노래라도 부르고 싶겠지만 시끄럽다는 말 한마디에 숨도 못 쉰다. 할머니가 입으로빨아 손자에게 주었던 김치의 맛이 없어진 세상이다.
효가 저 밑바닥에 떨어지고 부모들의 권위와 체면이 없어졌다. 차라리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하자. 이렇게라도 해서 아이들은 임금, 부모들은 개만도 못한 세상풍토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 조동욱 충북과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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