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회사를 비롯한 조직에서 생활하다 보면 상사를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될 수 있다. 결재라인을 통해 업무의 권한과 책임이 분산되는 대부분의 직장문화에서 아무래도 조직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책임자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첫 직장은 벤처신화의 최고점을 찍고 내려가던 무렵이었다. 자사주 스톡옵션을 받은 회사원들의 전설이 심심치 않을 시기였으나, 아쉽게도 우리 회사는 해당사항 없었다. 나의 상사들은 전 직장에서 커리어를 마감하고 오신 분들이 모인 벤처기업으로 외국 회사에서 외국인 CEO를 모시고 일했던 분들이었다.

당시 20대인 나보다 훨씬 외국어가 능숙했던 30대 후반에서 50대의 직장상사들은 매우 특별했다. 제일 말단인 나에게 반말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일정이 바뀌거나 중요한 정보가 있을 때 내가 놓치지 않도록 알려주었다. 각자 전 직장에서 중요한 업무를 했던 분들이라, 직책과 상관없이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있었고, 의견 교환이 가능했다. 유명한 맛집과 당시 나의 월급으로는 부담스러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종종 데려가 주기도 했다.

비 오는 어느 날 멋진 레스토랑에서 학생운동을 하던 첫사랑 면회 간 얘기를 해주시던 분, 술을 잘 못하는 나에게 캄파리오렌지를 소개해주며 맛보라고 알려주던 분, 당시 가장 핫한 재밌는 뉴스나 얘기들을 해주는 분들이 생각난다. 그들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진 않아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자신들이 내 나이 때에 일을 얘기해주며 스스로 생각하게 해주었다.

참 신기하게도 그 분들은 뭔가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나는 그 분들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 근사했고 세련되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친절하고 관심을 주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았다. 유치하지 않고 여유가 있었고 프라이드가 있었고 지적이며 편안했다. 그 당시에는 첫 직장 이다보니 당연하게 생각했고 퇴사이후 정신없이 살다보니 먼저 연락해주셨는데, 잘 이어가지 못한 게 아쉽다. 내가 그 분들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들처럼 근사한지 나도 모르게 생각한다. 세대와 직책에 상관없이 편안하게 대해주면서 권위가 있었던 나의 상사들처럼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다.

헛헛한 마음에 캄파리오렌지가 마시고 싶어진다. 보고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알려주고 확인해주던 보고 싶은 차장님 덕분에 처음 마시게 된 캄파리오렌지는 술을 잘 못하는 내가 분위기를 타게 해준 칵테일이다. 상큼한 향과 부드러운 목 넘김, 그리고 차장님과 나누던 즐거운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주제도 다양해서 영화, 음악, 온갖 세상사는 얘기들을 모두 나누었다.

직장상사이자 내 인생의 선배였던 그들이 보고 싶다. 그리고 세련되고 상큼하고 근사한 그들을 닮은 캄파리오렌지가 마시고 싶다. 그것을 마시면, 그 시절 그 때의 그들을 만났던 행복했던 기억이 나와 벗을 해주려나...... . 아니면 그들처럼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될 수 있을까? 둘 중에 어느 것이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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