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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을 욕보이다이광표 서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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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8  15: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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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서원대 교수] 10여 년 전 문화재 담당 기자 시절, 한 골동상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흥분된 목소리였다. 전화 내용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입수했다. 이 기자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다. 엄청난 유물이니 절대 보안을 유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하면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간송본, 국보 70호) 하나 뿐인데, 그 해례본이 하나 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서둘러 현장을 찾았다. 그를 만나러 가면서 내 마음은 사실 ‘기대 반 걱정(의심) 반’이었다. 그 귀한 것이 대체 어디 숨어있다 이제서야 나타났단 말인가. 실물을 살펴보고 사진을 찍고 전문가들을 만나 여러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10여 일이 흘렀고, 내가 내린 결론은 ‘가짜’였다.

그 해례본은 복제품이었다. 골동상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지만 가짜(복제품)임에 틀림없었다. 그 분이 복제품이란 사실을 모르고 입수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안목이 떨어지는 골동상이다. 아니면 그가 직접 혹은 누군가와 함께 복제품을 만들고 진품인 척 유통시키려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는 문화재 위조범이다. 2008년 7월, 훈민정음 해례본이 또다시 나타났다. 경북 상주에 사는 골동상 배 모씨는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다. “집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나왔다. 이것을 국보로 지정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관계자들이 현장조사를 나갔고 진품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한 달 뒤 상주에 사는 또다른 골동상 조 모씨가 “그 해례본은 우리 집안에 전해오는 유물이다. 배 씨가 우리 집에서 고서적들을 사가면서 슬쩍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곤 배 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른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이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조 씨는 2011년 6월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배 씨는 판결을 거부하고 해례본을 돌려주지 않았다. 배 씨는 절도 여부를 판단하는 형사소송에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민사와 형사를 종합해보면, 배 씨가 훔쳐간 것은 아니지만 소유권은 조 씨에게 있다는 말이 된다.

2012년 조 씨는 해례본을 되찾으면 국가에 기증하겠다면서 기증식을 가졌다. 이렇게 해서 상주본의 소유권은 현재 국가에 있다. 그러나 배 씨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있다. 압수수색을 했지만 해례본의 행방을 확인하지 못했다. 배 씨가 해례본을 낱장으로 뜯어 비닐에 넣은 채 땅 속에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해례본은 점점 더 훼손되고 있다. 배 씨는 지난달 말 국정감사에 나와 “1000억 원을 줘도 훈민정음 해례본을 내놓지 않겠다”고 했다. 불법 점유자인 그가 국민과 정부를 협박한 것이다. 현재 해례본 회수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그렇기에 배 씨를 잘 설득해 협상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해례본의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이 있다. 상주본은 이미 많이 훼손되었고, 배 씨는 지속적인 범법 행위를 통해 우리 국민을 욕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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