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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과 뇌물, 그리고 모두가 평등한 사회조재강 청주시 상당구 건설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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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9  17: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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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강 청주시 상당구 건설과 주무관] 사람은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은 물론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다.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며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게 되면 자신의 주변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해결을 부탁하고 그것이 이뤄질 때마다 감사의 마음으로 식사나 가벼운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던 미풍양속이었음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탁은 청탁으로, 선물은 뇌물로 바뀌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주고받는 사람 모두 불편한 관계가 돼버린 것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살아가며 어려움과 마주치고 그것을 해결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는 일 또한 다반사일 것이다. 그때마다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자 시작한 부탁의 횟수와 범위가 점점 커진다면 순수한 사람 간의 부탁과 마음의 선물이 아닌 이익 또는 이권이 결부된 청탁과 뇌물의 관계가 된다고 보는 것이 잘못된 생각은 아닐 것이다. 청탁과 뇌물의 관계를 단순한 어려움의 부탁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사회구성원 간 순수한 정(情)으로 보기에 어려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류가 현재의 사회체제를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청탁과 뇌물의 관계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인류는 원시부족사회에서 현재의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회와 국가체제를 거쳐 발전해 왔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선택한 민주주의 체제 이전의 사회에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으로 주종 관계의 계급으로 사회 구성원이 분류됐음은 필연적이었다. 그런 사회체제에서는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피지배층의 구성원이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배층에게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뇌물이 오고 갔음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로 인한 불평등한 관계의 지속은 물론 불이익이 피지배층에게 귀속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울러 지배층 역시 피지배층에게 보호(?)의 대가를 요구했음은 물론이고 약자인 피지배층의 구성원들이 지배층에게 지급하는 재화의 규모와 범위는 천차만별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그러한 불평등 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청탁과 뇌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이어왔음은 분명했을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청탁과 뇌물의 연결은 사회구성원 간의 불평등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유와 평등을 기본 이념으로 유지되는 사회이다. 청탁과 뇌물의 거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이념 중 하나인 '평등'이라는 가치를 파괴하는 행위이므로 대다수 국민들이 옳지 않은 것으로 인식하고 그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청탁과 뇌물의 문제는 단순히 부조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청탁과 뇌물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공직자는 스스로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을 무시함으로써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임을 부정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청탁과 뇌물의 척결은 공직자 스스로 민주주의 국가를 살아가는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수행함은 물론 주민들에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평등'의 권리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올바른 행동이며, 우리 사회가 더 밝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공직자 모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지의 실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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